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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이기는 건 용기와 책임감
전염병 이기는 건 용기와 책임감
  • 정민기
  • 승인 2021.03.19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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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민 지음 | 김연난 옮김 | 학고방 | 548쪽

『페스트』를 쓴 카뮈는 전염병을 직접 겪어본 적이 없다. 그는 자료 조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도시를 묘사했다. 그의 묘사가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 『페스트』 도입부에 병원에서 쥐 한 마리가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장면은 책을 읽은지 15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전염병을 소재로 소설을 쓴 작가가 카뮈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도 42년 전에 전염병 소설 『스탠드』를 썼고, 딘 쿤츠 역시 40년 전에 『어둠의 눈』을 썼다. 두 소설 역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아니다. 스티븐 킹은 미국 유타주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를 접하고 의사 지인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소설을 써내려갔다. 딘 쿤츠 역시 SF소설로 유명한 작가이며, 자료 조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중국의 작가 비수민(畢淑敏)은 앞서 소개한 세 작가들과 다르다. 그는 중국에서 사스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 특별취재단으로 활동했으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화관바이러스』를 썼다. 


한국에 비수민 작가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에서 일명 ‘1급 작가’로 취급받는 유명작가다. 여군 병사로 지원해 군 복무를 하다가 군의학교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일했다. 의사가 된 지 20년이 되던 해에 돌연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수많은 문학상을 받으며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사스 바이러스 특별취재단 경험 녹인 소설

의학 지식을 갖춘 비수민은 중국작가협회의 추천 덕분에 사스 바이러스의 위력을 코앞에서 지켜봤다. 이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경험을 숙성해 2012년 이 책을 출간했다.
소설 속 주인공 ‘뤄웨이즈’는 작가 자신을 소설 속에 투영한 인물이다. 뤄웨이즈는 비수민과 마찬가지로 의학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심리학을 공부했고, 필력이 좋은 작가다. 또한 여성이라는 점도 똑같다. 


비수민 작가는 소설의 문을 한 통의 전화로 연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린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뤄웨이즈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화 속 화자는 주인공에게 정부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취재단을 모집중인데 그중에서 작가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뤄웨이즈는 보살펴야 할 나이든 어머니가 있지만, 대의를 위해 취재단 초대를 승낙한다.


전염병 관리 사령부에 간 주인공은 충격을 받는다.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것보다 사망자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뤄웨이즈는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활동,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직접 목격하면서 조금씩 가려진 진실을 알아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와 책임

중국의 한 신문사 인터뷰에서 비수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용기와 책임감이 결여되고 환경 위기감이 없다면 이 소설을 읽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당신에게 휴머니즘 정신이 없다면 차라리 이 소설을 읽지 말고 던져 버려라.” 


이 소설은 휴머니즘 정신을 정직하게 담고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영화같이 이야기의 문을 열고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지고 전세계적으로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이 모든 발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용기와 책임이 필요했을지 생각해본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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