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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나쓰메 소세키의 문명론·문학예술론
화제의 책 : 나쓰메 소세키의 문명론·문학예술론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7.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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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국내 문학계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행인', '마음' 등을 쓴 일본 메이지시대의 소설가이며, 영문학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이기도 했다. 그간 소세키의 소설들은 초기작 몇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내에 소개됐고, 최근 그가 남긴 서간문까지도 번역된 바 있다. 하지만 '산문'의 형태로 발표된 그의 중요한 글들은 미처 소개되지 못했는데, 그것들이 이번에 '나쓰메 소세키의 문명론'과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예술론'(이상 황지헌 옮김, 소명출판 刊)으로 번역돼 나왔다. 이로써 소세키가 남긴 정신적 유산의 거의 모든 것이 이 땅으로 건너온 셈이 됐다.

소세키의 글들이 중요한 것은 그가 영문학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영문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문학을 사유해 독자적인 문학론을 남겼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영국의 문학과 일본의 문학이 갖는 근원적 차이점에 대한 소세키의 예민한 알아차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로써 일본에서의 문학에 대한 개념은 서양 것의 번역이 아니라 일본적인 것의 근대적인 형식화로써 나아갈 수 있었다.

이번의 '문학예술론'과 '문명론' 두권의 책에서는 '독창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인으로서의 소세키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다. '문학예술론'은 문학론과 관련 평론을, 그리고 회화와 연극에 관련된 평론들을 모았다. 소세키는 知的 이상을 추구하는 서구 자연주의 문학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윤리적이며 情的인 이상을 추구하려는 동양적인 문학예술론을 펼친다. 그가 말하는 '윤리'라는 것은 근대와 전근대의 격동기라는 메이지 시대와 연관이 있다. 구막부시대의 전통과 근대적 메이지 시대를 함께 아우른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자서전적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이런 경향은, 가족관과 사회관, 그리고 연애관, 생사관 등에서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에 인간의 머리를 휩싸는 심각한 질문들과 정면으로 부딪히려는 실존적인 충동을 양산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런 윤리적 충동을 문학작품과 이론을 통해 뚜렷이 부각시켰다는 점이 소세키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본문에서는 인간의 존재 근거에서 시작해 인간의 욕망과 이상, 그리고 문학의 성립 근거와 토대 등에 걸친 근원적인 논의가 펼쳐져 있는데 소세키는 에도 시대의 문학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낭만주의의 효용성과 창조적 계승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문제로 몰고 가는 입센류의 자연주의 문학에 대해 소세키는 비판하고, 여유 문학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초기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그 문학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론'에 실린 소세키의 글과 강연문은 주로 메이지 40년에 발표된 것들이다. 1부에서는 소세키의 8편의 강연록을, 2부에서는 소세키가 쓴 時論 11편을 선별해서 실었다. 소세키의 문명론은 '인간 활력의 발현의 경로'라고 정의되는 근대 문명이 어떠한 욕망에서 태동됐고,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발전해 가는가 하는 문제를 비롯해, 동아시아적 특수성으로서의 일본의 근대가 어떠한 상황에서 출발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현재 어떠한 처지에 도달해 있는가 하는 문제 등이 독자적인 시각과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근대 문명의 원리와 경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고심은 외발적 근대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동아시아 근대의 토대와 지향점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반면교사로서 훌륭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일본 근대성이 형성되던 격동의 시기를 살다간 소세키의 '윤리적 고민의 산물'들은 오늘날 근대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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