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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서적_자크 데리다의 『시선의 권리』
예술서적_자크 데리다의 『시선의 권리』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7.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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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할 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회회의 진리’와 ’장님의 기억‘에 이어 또 한권의 예술서를 내놓았다. 이른바 포토로망(사진-소설)의 형식을 띤 것으로, 마리 프랑수아즈 폴리사르의 흑백사진 2백90장에 데리다의 글이 덧붙여졌다.

책 앞부분엔 어떤 언어도 없이 이미지들만 나열되고 있다. 거기엔 두개의 몸이 있다. 도미니크와 클로드, 두 연인은 키스하고 애무하고 사랑을 나눈다. 이어 뛰쳐나오는 여성과 그를 카메라로 찍는 또 다른 여성, 반복되는 거울과 담배의 이미지, 글을 쓰는 여성과 기괴한 화장을 한 두 소녀, 그리고 다시 처음의 두 여성이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사진의 반복. 인물들은 떠나고, 돌아온다. 그들은 옷을 바꿔 입고 파트너를 바꾸지만, 결국 왔던 자리로 돌아와 애초의 자세로 사랑을 한다. 여기서 떠남과 돌아옴은 구분되지 않고 심지어는 떠남도 돌아옴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을 지키는 사진은 말을 ‘보여줄’ 뿐. 말하기는 말하고자 하는 것만을 전달하지만 그 외의 것은 배제해버린다. 반면 ‘침묵’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다시 말해 말이 배제된 이미지는 담론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데리다가 말하는 사진이 갖는 ‘시선의 권리'다.

나아가 사진들의 표면위에 있는 인물들과 사진을 바라보는 자 누구나 시선의 권리를 가진다. 시선이라는 것은 사진 내의 시선의 각도와 자격, 권리, 주장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미지들은 관객인 우리에게 오직 그 시점에 순응할 것만을 요구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미지의 응시의 권리의 의해 지배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이지만, 어김없이 데리다의 해체적 이론과 실행이 드러나 있다. 즉 데리다는 사진이란 매체를 빌려서 피사체 자체와 배경, 주변의 사물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혹은 비관계, 거리와 실내, 의상과 탈이, 그리고 이성애와 동성애 등을 말하고 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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