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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사람 만드는 예술
기고 - 사람 만드는 예술
  • 김성영 성결대 총장
  • 승인 2004.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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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비대증에 걸린 지식인에게 인성을

루마니아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버질게오르규가 쓴 ‘키랄레싸의 학살’이란 소설이 있다. ‘주의 긍휼을 기다린다’는 뜻을 가진 고난당하는 한 마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나는 언제나 잊지 못한다.

보고밀이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전쟁영웅에게 강한 두려움과 콤플렉스를 가진 이 마을의 군주는 끝없는 학정을 일삼는다. 선량한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참담한 키랄레싸 마을의 전말은 장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진 교장선생이 보고밀의 영특한 아들 세라펭을 한밤중에 파리로 탈출시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큰 사람이 되어 절망에 처한 고향을 구원하라는 의미이다. 교육이 한 가정을 위해서나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식을 더하기보다 사람됨을 더하기

사람은 배우는 존재이다. 그런데 ‘배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새삼 자문해 본다. 단순히 무지를 깨우쳐서 지식의 정도를 더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터이다. ‘지식을 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됨을 더하는 것’이리라. 지식을 더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됨을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교육현실은 어떤가.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라는 바퀴와 사람됨이라는 바퀴는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첨단을 달리고 있는 오늘의 초고속 정보화 기술문명이 자꾸만 인간성을 파괴시키고 있다고 그 원인을 기계에 돌리고 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제자를 대하는 선생된 우리들의 자세에 있다고 본다. 선생된 우리들이 얼마나 숙연한 사명감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인격의 감화와 감동을 주고 있는지 늘 새롭게 성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은 한 떨기 장미나 백합의 향기에도 쉬 취하고 감동한다. 내면과 외면이 아울러 아름다운 여성의 향기에 감전된다. 참된 사랑에 눈뜨고 영향을 받으면 철부지도 사람이 되고 영혼의 매무새를 고쳐 잡는다. 아무려면 장미나 백합이겠는가 하물며 사람을 가르쳐 사람만드는 신성한 사명을 가진 선생이야 더 큰 인격의 감화력과 인품의 향기를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일에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 제자들을 통해 가르치는 우리들의 실패한 모습을 쉽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기계가 비인간화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비인간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광속을 넘어서 염속을 다투는 초고속정보화시대의 교육일수록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전인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시대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통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을 만드는 일에 우리의 교육이 집중되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할 때 미래사회는 절망이고 재앙이다.

이 땅의 대학들은 ‘人性과 IT의 만남’, 그리고 그 조화와 균형이란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키랄레싸 마을의 군주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그 지식인은 공동체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지식인이다. 비유컨대 인성이 결여된 채 IT 비대증에 걸린 ET같은 지식인이다.

 

반면에 그 마을의 교장선생도 지식인이다. 그런데 그 지식인은 공동체와 사회를 살리려 고뇌하는 지식인이다. 한 마을이 당하는 오늘의 절망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야음을 틈타 대처로 탈출하는 소년 세라펭은 인성과 IT의 만남으로 균형잡힌 21세기 우리의 지도자여야 한다.

 

교장선생은 무미건조한 IT만으로 잔뜩 배불리고 돌아오라고 소년을 떠나보내지 않았으리라. IT의 인격 넉넉한 주인이 되어 돌아오라는 염원이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시인 노발리스가 먼저 말했던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예술이다”라고, 이처럼 멋진 금언을 만드는 일에는 우리가 한 걸음 늦어도 좋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일에는 늦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지금이 그 시간이다. 동서고금에 언제나 불변인 세 성직, 즉 종교계와 법조계와 교육계 중의 한 분야를 책임 맡은 우리들 선생된 영광이 그 빛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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