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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부터 식민제국까지… 일본 근대 밝힌 ‘총론’
정당정치부터 식민제국까지… 일본 근대 밝힌 ‘총론’
  • 이형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현대일본센터 센터장
  • 승인 2021.02.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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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 미타니 타이치로 지음 | 송병권, 오미정 옮김 | 평사리 | 336쪽

                 
일반적으로 한국학계에서 일본 연구에 대한 평은 개별 연구에 치우쳐 큰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가 적다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업적주의가 강조되다 보니 특수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 각론에 치우친 연구가 늘어나면서 일본에서조차 최근의 연구들은 전체 연구 지형과 동떨어진 ‘끈 떨어진 연’과 같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러한 각론적인 연구 경향을 비판하며 일본 근대에 대한 ‘총론’을 시도한 원로 정치학자의 저서가 최근 출간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일본정치외교사 연구자 중의 한 명인 미타니 다이치로 동경대학 명예교수가 본인의 50여 년 각론 연구를 토대로 하여 일본 근대에 대한 개념적 파악을 시도하는 책을 낸 것이다.

 

일본은 왜 군사적 식민주의로 돌진했나


저자는 칼 마르크스와 동시대 사람으로 영국 근대에 대한 총론적 고찰을 시도한 저널리스트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월터 배젓(1826-1877)이 『자연과학과 정치학』에서 제시한 ‘근대’ 개념에 견주어 일본 ‘근대’의 특질을 밝히고 있다. 4가지 개념에 대해서 차례로 검토해 보자.

첫째, ‘토의에 의한 통치’가 어떻게 일본적 형태로 성립되었는가를 의회제와 정당정치를 통해서 살폈다. 막번 체제하 ‘관습의 지배’가 붕괴하면서 배태된 ‘공의여론'의 요청에 대응해 출현된 의회제와 엄격한 권력 분립을 규정해 반정당내각적이라고 평가된 메이지 헌법 아래에서 정당내각이 왜 성립했고 붕괴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하버마스가 제기한 ‘정치적 공공성’의 선구로 나타난 ‘문예적 공공성’을 18세기 말 이후 막부의 직할 교육기관인 쇼헤이코 출신자를 중심으로 한 신분과 소속을 초월한 횡단적인 지식인층에서 찾고 있는데, 이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막부와 번 사무라이들의 횡단적인 ‘학적 네크워크’에서 메이지 유신의 성공을 찾는 서울대 박훈 교수의 논의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무역’과 관련해서는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과 성장 그리고 몰락을 다루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자립적 자본주의가 ①정부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실험, ②국가자본의 원천인 조세제도의 확립, ③자본주의를 담당할 노동력 육성, ④대외평화의 확보를 통해 성립했고 이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국제적 자본주의로 이행하지만 대공황을 거치면서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는 동년배의 경제사학자인 이시이 간지 교수가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분류를 원용해 일본자본주의를 ‘정치적 자본주의’라고 평가한 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셋째, 식민지와 관련해서 불평등조약이 초래한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를 추구한 구미 열강과 달리 왜 일본이 군사적 의존도가 높은 식민지제국으로 돌진했는지에 대해 다뤘다. 서양과의 불평등조약에서 벗어나 ‘자립적 자본주의’에서 ‘국제적 자본주의’로 전화하는 단계에서 일등국에게 허용되었던 최혜국조관을 획득할 수 없었던 일본은 유럽 열강과 달리 경제적 이익보다 군사적 안전 보장을 위해 식민지를 영유하는 식민지 제국으로 돌진했고 이러한 내셔널리즘의 발단이 제국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황제', 일본 근대의 기독교


한편, 배젓의 논의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천황제를 특징적 요소로 추가하여 설명한다. 유럽 근대의 기독교적 전통과 대비해 일본 천황제를 유럽 기독교의 '기능주의적 등가물'로 파악해, 서양 근대에서 기독교가 한 역할을 일본 천황제에서 찾아 국가의 기축으로 삼아 교육칙어를 반포하여 도덕의 입법자로서 천황을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종장에서 저자는 일본 근대의 경과로부터 일본의 장래를 조망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를 슬로건으로 삼아 급속도로 추진된 일본의 근대화는 아시아·태평양전쟁 패전을 계기로 평화헌법으로 대표되는 강병 없는 ‘부국’으로 노선을 수정하면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고 결산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근대화 노선은 수복이 곤란한 정도의 심각한 좌상을 입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전후 부국 노선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강병’(재무장화)의 주장이 소환되는 상황 속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는 실종되고 ‘전문가 지배’에 의한 ‘입헌적 독재’로 나아갈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라는 큰 주제 속에서 일본 근대의 형성, 발전, 위기 그리고 종언을 서양 근대와의 비교 속에서 총론적으로 조감하고 있다. 근세(에도시대), 근대를 시간 축으로 정치·경제·사회·교육·사상의 제 측면을 횡단하며 일본의 근대가 무엇이었나에 대한 묵직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하고 있다. 대중역사서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지적 자극이 풍부하게 스며든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형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현대일본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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