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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兵營式 획일주의와 학문
나의 강의시간-兵營式 획일주의와 학문
  • 이동환 고려대 한문학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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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교수(고려대 · 한문학)

韓國漢文學 연구만큼 여러 분야의 지식을 고루 갖추기를 요구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한문이라는 외국어, 口語로서의 중국어와도 또 다른 文言文, 그것도 옛날 한문을 쓰던 어느 나라에서도 지금은 쓰지 않는 화석화된 글을 익혀야 한다. 웬만한 수재도 십여 년 세월을 辛苦해야 한다.

한국의 역사와 사상도 그 분야의 전공자 못지않게 알아야 한다. 바로 작품이 涵攝하고 있는 역사적·사상적 맥락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 문학 연구에 있어서나, 가령 신비평같이 내적연구를 지향하지 않는 한, 요구되는 전제지만 특히
한문학에 있어서는 그 관계가 보다 긴밀하다.

중국의 고전 작품에 대해서도 밝아야 한다. 우리 한문학 작품은 대부분 중국의 고전을 전범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많은 故事도 가급적 광범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 한문학 작품에도 중요한 표현 媒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문학 내지 문화에 관한 중요한 이론들의 흐름도 알아야 한다. 한국 한문학 연구가 당대에 살아 있는 연구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고급 두뇌는 돈과 명예를 찾아 몰려가고, 대부분은 대학 입학 자격시험 점수에 맞춰서 들어온다. 그래서 맹자의 人生三樂 가운데의 하나인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라는 것은 관념 속에서 반추되는, 그야말로 故事일 뿐이다. 물론 이런 가운데도 특수한 개인들이 있어서 인문학의 한 영역으로 겨우 꾸려온다.

한국 한문학이 인문학의 하나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60년대부터니까 이제 40여 년이 됐다. 그런데 이 일천한 영역이 한번 풍성한 수확도 누려보기 전에 자멸을 강요당하는 갖가지 조건들 앞에 노출돼 있다. 뒤쳐진 인재라도 더 단단한 전공자로 길러 내려는 의욕도 그 베풀 터전조차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학과를 개설할 초창기에는 4년간 60~70학점대의 전공 이수가 가능했다. 전공 역량을 기르기에 충분한 조건은 아니지만, 한문 원전 독해라도 일정한 성취가 겨우 가능했다. 그 뒤 몇 차례 교과 과정 개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4년간 40~50학점대로 축소됐다. 아무리 교과 과정을 효율적으로 안배하고 강의에 공력을 들인다 해도 한문의 초보에나 눈뜨게 될지 걱정이다.

오늘날 대학에서의 모순의 근원은 획일주의에 있다. 전공 학점의 비중이나 강의 시간의 운용 등 분야별 특성에 대한 고려없이 한 틀에 몰아넣고 밀어붙인다. 창의는 자유로움에서 생기는 것. 이렇게 兵營式 획일주의 대학 운영이 얼마나 고귀한 창의성을 압살하는가.

한국 한문학의 경우 졸업 학점을 1백60학점대쯤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대학의 졸업학점수를 줄이는 데는 교육학적으로 그럴싸한 설명이 있겠지만 다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소리다. 그리고 1백학점 쯤 전공과목 이수에 안배한다. 그러나 교과목은 가급적 단촐하게 편성한다. 그래서 그럴 필요가 있는 과목은 2~3년 걸려서라도 다 마치게 한다. 실제로 ‘논어’는 빨라도 1년 이상, ‘맹자’는 2년 이상 걸려야 다 배운다.

그런데 요즘의 대학처럼 대부분의 교과목이 3학점씩 한 학기에 끝나도록 획일화돼 있는 체제에서는 겨우 교재의 초입에서 끝나기 일쑤다. 1백30학점대 중에서 40~50학점대 정도를 배당받은 전공과목, 그 강의의 조건이 이러하다. 아무리 대학 강의는 기성 지식을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산출하는 원리와 방법을 가르치는 데 주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리와 방법도 일정 정도 이상의 실제 사례에 대한 학습과 훈련을 쌓아야 비로소 터득되는 법이다.

대학의 과정이 이럴진대 정말 전문가를 길러낸다는 대학원에서의 전공 역량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한국 한문학의 경우 지금 전국에서 해마다 양산돼 나오는 석·박사논문의 수준이 끝 모르는 추락을 하고 있다. 이 추락에 나 또한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어 학교를 떠나는 마당에 통한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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