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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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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현 인제대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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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이 병을 부른다면…

KBS에서 방영(2003 6월 10일)된 ‘아토피와의 전쟁’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아토피 피부염을 비롯한 소아 알러지 질환이 지난 10년 사이 10배 이상 폭증했다고 한다. 2001년 국민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4세미만 유아들의 만성질환 1위가 아토피 피부염이며 최근엔 신생아의 60~70%가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천식과 비염도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독성물질의 증가라든지 밀폐된 구조의 아파트 생활로 인한 집먼지 진드기의 증식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이 지적됐다. 알러지라는 것이 항원에 대한 일종의 과민반응이라는 점에서 볼 때 알러지 질환의 폭증에 대한 주요한 원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결핵균이 있다고 모두 결핵에 걸리는 것이 아니듯이 이런 물질들이 곧 알러지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필요조건은 되겠지만 충분조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필요조건은 외부에서 오지만 충분조건은 우리 몸에서 온다.

소아 알러지와 생활환경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개발도상국보다는 선진국에서,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에서의 발병 빈도가 높다. 말하자면 잘살면 걸리는 병이다. 앞서 프로그램에서 후지타 고이치로 교수는 위생적인 청결문화가 알러지를 만들어낸다는 얼핏 역설적으로 보이는 주장을 한다. 청결이 병을 일으킨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넓은 철학적 맥락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다.

현대의학에서의 건강이란 무엇인가. 철학적으로 볼 때 그것은 타자의 차단(위생)이고 그것을 통한 자기 순수성(청결)의 보존이다. 결국 질병이란 것이 ‘타자에 의한 자기의 부정’이라고 볼 때 타자의 침입을 막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근절시키는 것이 건강의 요체라고 하겠다. 이것이 파스퇴르-코흐의 패러다임이며 현대의학의 근본 교조(dogma)다.

타자를 차단하고 자기순수성을 유지하면 자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자기’라고 하는 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사실 불변적인 실체로서의 자기는 없다. 자기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규정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 속에 알갱이처럼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자기는 실체가 아닌(자성이 없는) 緣起됨이라고 한다.

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몸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이 광대한 우주를 압축(또는 전개)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필자가 좋아하는 용어로 “작은 가이아”-이다. 이곳은 60조 개의 세포와 그것의 10배에 해당하는 세균들이 모여서 일궈내고 있는 관계망이다. 내 몸은 이 억조창생들이 모여 사는 多者들의 삶터다. 여기에는 불변적인 ‘나’도 없고 ‘나 아닌 것’도 없다. 나와 나아닌 것 즉 자기와 비자기가 만나서 싸우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몸의 건강은 이 끊임없는 소통 속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육아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무균적 시설이 갖춰진 병원에서 아기는 태어나고, 아기와 가족 간의 첫 대면은 12mm 겹유리로 차단된 벽을 통해서 이뤄지고 멸균 소독된 우유병을 빨고, 종합 예방접종을 맞고 퇴원한다.”(http://antibody.co.kr) 자연(세균을 포함한)과의 소통의 단절, 이것이 소아 알러지의 진정한 원인이다.

가끔 코끼리는 다른 코끼리의 똥을 먹는다. 특히 새끼 코끼리의 경우 똥의 섭취는 필수적이다. 그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코끼리의 똥 속에 들어있는 세균을 섭취하기 위한 것이다. 똥 속에는 코끼리의 장 속에 사는 상주균이 들어있는데, 이것이 새끼 코끼리의 장 속에 들어가야만 정상적인 장이 형성된다. 사실 생쥐를 통한 실험 결과 무균상태의 생쥐에게서는 장의 점막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이것은 타자(세균)와의 소통을 통해서 자기(장)가 규정된다는 원리에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기들에게도 똥을 먹여야 할까. 다행히도 인간의 경우 그 상주균이 산모의 초유 속에 들어 있다니 아기들은 안심해도 좋다. 이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단절이 아니고 소통이고, 순수함이 아니고 雜함이다. 알러지가 단절에서 온다는 점에서 알러지의 증대와 산모의 모유기피 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과 세균, 몸과 자연이 소통하는 시끄러운 저자거리가 바로 우리의 大腸이다. 다른 어느 곳 보다 자기와 비자기가 다투고 화해하면서 독특한 나의 몸을 만들어 가는 곳이 대장이다. 항생제의 남용과 육식위주의 식생활의 변화로 이 대장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종래에 우리나라에서는 드물던 대장암이 어느덧 암 가운데 발병률 4위로 올라섰다는 것은 우리 몸의 자연과의 소통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증거다. 자연과의 소통의 회복은 우선 나도 모르게 망가져 버린 내 몸을 바로  잡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조용현 / 인제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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