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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_무한히 뻗는 집의 상상력
예술계 풍경_무한히 뻗는 집의 상상력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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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숨, 집의 결' 전(2004.4.13~10.29)

열다섯 명의 작가가 구림마을에 모여 ‘집’에 관한 철학과 미학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관장 윤난지)과 영암군이 함께 기획전을 열고 있는 것. 구림마을은 고대주거문화유적지며 전통한옥이 보존돼온 곳으로, 작가들이 옛 터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인식하면서 현장에서 작품을 형상화 했다.  

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김태곤은 집을 우주로 확장한다. ‘집宇집宙’란 작품인데, 천자문의 ‘하늘 천 따 지 집 우 집 주’에서 집이 우주와 통한다는 걸 착안해낸 것. 블랙라이트와 실을 이용한 공간설치로 신비로운 우주공간을 생성하면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생명과 움직임이 있는 전체로 ‘집’을 이해한다. 채승우는 집을 ‘경계’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집을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뜻하는 ‘백색의 경계’라 이름 붙였다. 백색은 집의 경계적 특성인 안팎, 유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며 사람의 들고남과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담아내 장소의 역사를 기록한다. 

전통과 현대가 묘하게 결합된 작품들도 눈에 띈다. 김장섭의 집은 사진작품인데, 구림마을의 자연풍경과 전통가옥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시간의 흔적이 겹겹이 묻어나는 전통가옥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변형한다. 서도호의 ‘투영’은 상대포에 투명소재로 제작한 문을 띄우고자 했던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미완의 프로젝트다. 사물과 이의 그림자 관계에서 실재성을 고민했는데, 전시장의 흰 벽에서 돌출하는 전통적인 문양과 형태의 문은 안팎의 경계성을 표출한다. 한편 박실의 ‘사이’란 작품은 시간의 묘한 공존을 이뤄낸다. 가마터 유적지 발굴을 기념해 복원한 전통가마 안에 과거와 현재의 사물들이 임의적으로 놓이면서 작품은 시공의 경계구분이 모호한 ‘사이’적 개념을 획득한다. 전통적인 한옥마을에서 동시대적인 감수성이 만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바코드를 차용한 작품이나 공간개조를 통해 진화하는 집의 개념, 자신의 머리카락을 엮어 몸의 연장으로서 집을 표현한 것 등 집에 대한 작가들의 상상은 기존 틀을 벗어나 무한정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거기엔 살아 숨쉬는 집, 생명이 느껴지는 집들이 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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