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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생각하는 이야기
  • 이봉재 서울산업대
  • 승인 2004.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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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대학 선생으로 있다보니 친구들도 대략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와 그들의 작은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친구들은 이론에 대해 입장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노선과 지향점, 상대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 틈에 누가 좋아보인다고,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다가, 더군다나 좋다는 그 정치인이 하필이면 보수로 평판난 사람인 탓으로, 힐난을 듣기도 했다. 너무 이미지로 사고하지 말라고…

그렇다. 이미지를 좋아하고 이미지를 사고의 매듭으로 삼는 것, 그건 나의 두드러진 습관이다. 그러나 습관에 불과하지 않다. 그건 내 철학의 한 가지 중심이다. 말을 신뢰하지 않는, 말의 세계만으로는 답답해하는 내 철학의 표현이다.

논쟁이 상대방을 설득해낼 수 있을까. 비판이 비판받는 사람을 깨닫게 만들까. 틀린 말이 있을까. 불가능한 말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했던 무수한 오해와 깨달음, 내가 남들에게 주었던 수많은 오해와 깨달음의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볼수록, 나는 ‘말’을 ‘가로막으며 소통시키는’ 매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의 이미지 애호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연한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앎의 ‘정연함’이란 무슨 뜻인가. 메타포 없는 철학, 직관 없는 이론, 이미지 없는 말,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그것들이다. 주장하고 논변하지만 그 중심은 텅 비어있는 것들. 그냥 같은 말이 반복될 뿐인 것들. 세상에 흔들림이나 떨림 같은 것은 아예 없다는 듯, 민방위 훈련 날 사이렌처럼 무미하게 울려 퍼지는 것들.

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정운영씨의 어떤 글에서 읽은 것이다. 로제 가로디라는 저명한 지식인이 당노선에 반발한 탓으로 1970년 19차 프랑스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제명당하는 사건이다. 가로디는 36년간 공산당에 복무했던 뛰어난 이론가였고 그런 그가 당에서 쫓겨나는 사건은 당시의 큰 뉴스였다고 한다. 비통함과 기자들의 집요함에 지친 가로디는 혼미한 상태에서 차를 몰았고, 한 시간여 만에 어느 곳엔가 멈췄다고 한다. 그 곳은 바로 20여년 전 헤어졌던 여인의 집.

그 여인은 원래 수녀가 되려던 중이었는데, 천상의 하느님보다 지상의 헐벗은 이들이 더 중요하다는 가로디의 꼬임으로 연인이 됐고, 그러나 레지스탕스 활동 중에 헤어지게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 여인의 오래된 집은 문이 열려있었고, 무작정 들어간 그 집 식탁에는 두 명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단다. "혹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소?" "그래요. 바로 당신이에요. 라디오로 당신 사건을 계속 듣고 있었지요. 쫓겨난 당신이 여기 말고는 달리 갈 데가 없을 것 같았어요. 당신이 좋아하던 포도주와 호밀빵이 이것 맞지요?"

이 신비스러운 사건을 말하면서 가로디는 "사랑이 없으면 혁명도 없다"는 절귀를 남겼다는데,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그 여인은 25년간 이사도 안갔나. 25년 전 그 집을 어떻게 기억하나. 그 식사 후에는 어떻게 됐나. 그 여인은 왜 그랬나. "사랑이 없으면 혁명도 없다"는 말도 사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하고 기억한다.  

학생들에게 전달해준 나의 지식들은 좋든 나쁘든 간에, 기말시험이 끝나면 거의 대부분 잊혀질 것이다. 지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필요하다면 기억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오전의 조용한 수업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웃던 기억. 조금 피곤하지만 진지했던 기억, 그리고 가로디의 신비한 이야기, 말하자면 그런 것들 아닐까. 말로 번역되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이 기억의 몸뚱아리에 냄새처럼 배이지 않을까.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가로디의 이야기는 일종의 신화 같은 것이라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여지가 풍부한 신화나 사진 같은 것이라고. 그 의미의 모호한 윤곽 내부는 각자 채우는 것이라고, 사랑을 해보면, 혁명을 해보면, 살아가다 보면, 가로디가 왜 거기 밖에 갈 곳이 없는지, 그 여인이 왜 가로디를 기다렸는지 왜 사랑 없이 혁명도 없는지 자기 나름의 해석이 생겨나게 하는 것, 그게 가로디 이야기의 힘이라고. 그런 이미지들 몇 개, 반복되는 신화들 몇 개가 결국 그 사람이라고. 결국 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믿는 사람의 말을 믿을 뿐이다.

이봉재 / 서울산업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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