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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감시와 통제
만인의 감시와 통제
  • 박창호 숭실대
  • 승인 2004.06.1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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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_정보유출사회의 위험성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을 주시하던 시선이 군주권력이었다면 한 사람이 만인을 주시하는 시선은 곧 규율권력임을 지적한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근대사회가 갖는 맹점을 통제와 감시라는 측면에서 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오늘날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정보사회라는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던져진 우리는 만인이 만인을 주시하는 시선 속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만인의 감시가 실제로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절감하지 못하는 위험사회가 오늘날의 사회다.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날아오는 스팸메일에 대해 삭제키를 눌러 제거하는 데는 온 신경을 쓰면서도 어떻게 나의 메일주소를 알게 됐는지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르는 곳에서 걸려오는 광고성 전화에 대해 나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김에 화가 나면서도 누가 내 번호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위험사회에 스스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정보사회는 개인 스스로가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여서 이러한 위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감시를 당하는 사람이 감시에 필요한 정보를 일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전자메일과 포털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웹브라우저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다음 접속에 필요한 입력의 수고를 덜 수 있는 쿠키의 적용은 접속에 관한 정보를 모두 제공하는 셈이다. 개인이 어떤 내용을 보고 있는지,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지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고스란히 자신의 정보는 필요한 곳에서 수집돼 포섭과 배제의 틀 속에서 범주화되고 있다.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쪽에서 자신이 배제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더구나 자신의 소비성향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갖는 편리함과 이득만 고려하고, 자신의 기호가 기업에서 광고회사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까지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보사회의 소비활동으로 마일리지를 누적하고 신제품의 카탈로그를 제공받고, 이벤트에 초청됨으로써의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늘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혜택을 생각하는 것이 앞서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인식은 뒷전이다.

위험은 자신의 정보가 컴퓨터를 켜는 순간 전화선을 타고 데이터베이스로 넘어가면서 이루어진다. 미국의 마크 포스터는 이 같은 오늘날의 사회를 “신중하게 설계된 건물도, 범죄학과 같은 과학도, 그리고 운영을 위한 복잡한 장치도 필요없는 수퍼 파놉티콘”이라고 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거대한 감시탑이라는 감옥의 사회인 것이다. 개개인의 정보가 자발성에 기초한 유출에서 시작된 위험이 컴퓨터를 켜놓기만 해도 정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져 나가게 되고 자신이 거대한 감옥의 어느 방에 놓여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꼴이 돼버렸다.

적극적으로 자신에 관한 정보를 통제하는 개인의 권리인 ‘정보프라이버시권’은 정보사회에서는 공허하게 돼버렸고, 여기서 개인은 해체되고 있다. 미국의 디즈니월드를 리얼리티의 쇼라고 한 프랑스 사회학자 보르리야르가 실상 놀라워했던 것은 관광객들이 이러한 현란한 쇼에 즐거워하는 대가로 방문객의 통제규칙에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것에 있었다. 우리가 정보사회의 위험이 간접적이고 미래의 것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나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과 혜택에서 너무 안주한 나머지 자발적인 속박과 통제에 무감각해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고객의 정보를 빼내 카드정보 중개상에게 팔아넘겨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그제서야 자신의 정보가 누출돼 있음을 느끼는 위험인식은 아날로그적 사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개인의 정보는 흐름의 논리 속에서 자신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빠져나가고 있으며 개인의 내밀한 영역은 자신도 모르게 침해되고 있다. 이러한 위험의 주체는 만인이다. 만인이 주시하는 만인의 권력의 폐해가 곧 정보유출사회의 위험인 것이다.

박창호 / 숭실대 정보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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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04-10-20 12:49:22
홍성욱 지음- 책세상
책에 있는 걸 옮겨놓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