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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행한 자와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면
불의를 행한 자와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다면
  • 조준태
  • 승인 2021.02.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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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책임과 판단』
한나 아렌트 지음 | 서유경 옮김 | 필로소픽 | 468쪽

 

뒤집힌 가치 속 정치적 판단의 문제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반성적 사유

어떤 삶도 그 삶이 마주하는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큰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나치와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사건을 직면했을 때,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삶은 결정됐다. 이 책은 그가 마지막에 남긴 미출간 에세이를 소개한다.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잘 알려진 아렌트는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그 명료한 개념은 사람들에게 아렌트 이론의 전모를 파악했다는 착각을 심었다.

비난과 오해가 쏟아졌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이론을 다듬었다. 『책임과 판단』에 담긴 8편의 글은 그중에서도 가장 원숙한 글이다. 번역은 한나 아렌트 전문가인 서유경 경희사이버대 교수(후마니타스학과장, 한국NGO학회장)가 맡았다. 

「독재 치하에서의 개인적 책임」과 「집합적 책임」에서는 사례들과 함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분석한다. 「도덕철학에 관한 몇 가지 질문」, 「사유함, 그리고 도덕적 고려 사항들」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칸트를 인용해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설명한다. 「리틀록 사건에 관한 성찰」과 「자업자득」은 각각 미국의 흑인 문제와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리인〉: 침묵한 죄?」, 「심판대에 오른 아우슈비츠」는 신이 죽어버린 20세기의 혼돈 속 선악 판단의 문제를 보여준다. 상이한 상황과 주제 속에서 아렌트의 통찰이 빛난다.

 

집단적 책임과 개인적 책임

아렌트는 인간을 규정하는 조건으로 ‘복수성’을 이야기한다. 홀로 있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감을 뜻하는 복수성은 인간의 삶에 정치적 행위를 낳는다. 정치적 행위가 유의미하기 위해선 나를 둘러싼 타인의 존재와 인정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타인의 정치적 행위가 의미를 획득할 때 나의 존재와 인정이 거기에 개입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단적 책임이 발생한다. 

“아이들은 복종하지만, 어른들은 합의한다.” 시민 일원으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복종’은 성립하지 않는다. 속마음이 어떠했든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그것은 지지가 된다. 이것은 공동체를 이룬 것에 따르는 책임이다. 언어와 문화를 비롯한 모든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삼았듯, 공동체가 행한 모든 죄도 우리의 것이 된다. 

모두가 나눠 책임을 지는 만큼 죄는 실제보다 옅게 느껴진다. 조금은 마음을 놔도 될까 싶지만 아렌트는 허락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아는 통합된 하나로서 존재할 수 없다. 때때로 우리는 후회를 하는데, 이것은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가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 속 둘’로 존재하는 우리는 나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집단적 책임으로 옅게나마 불의를 행할 때 ‘나’와 ‘불의를 행한 나’는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 아렌트의 말처럼 최악과 차악 중에 택일하래도 결코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나 자신과 불화 상태인 것보다 세계 전체와 불화 상태인 편이 낫다.”

 

 

상상력, ‘나’로부터 벗어나는 힘

아렌트가 생을 마감하고 시간은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 여전히 가치들의 자리는 바로잡히지 않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합의가 있었지만 새벽배송, 당일배송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편리함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편리함은 악을 저지른다. 서로 다른 두 가치가 등을 맞댄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까. 

아렌트는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조언한다. 타인을 떠올리고 그의 관점을 구성할 때, 한 개인의 사유는 대표성을 띠게 된다. 좁은 ‘나’로부터 벗어나 복수성을 갖게 된다. 복수의 입장을 맞추고 조율하면서 상상력은 정치적인 일을 한다. 이렇게 도출된 결론은 주관적이지만 보편적이다. 마치 아름다운 것이나 맛있는 것을 판단할 때와 같다. ‘주관적 보편성’은 정치적 판단 또한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판단력은 계산하지 않고 상상할 때 온전히 작동한다. 

『책임과 판단』은 판단력을 가진 우리에게 어떤 책임이 부과되는지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반성적 사유를 강조한다. 이 세상에 어떤 불의도 없을 때 나와 세상, 나와 내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불의를 행한 자와 친구가 되지 말고 불의를 당한 자와 친구가 되자. 이 행위, 그리고 이 행위를 낳은 사유가 “결단의 순간들”에서 나를 구할 것이다.

 

조준태 기자 a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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