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2:00 (일)
조은 동국대 교수가 말하는 ‘기러기 가족’
조은 동국대 교수가 말하는 ‘기러기 가족’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06.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구적 가족주의’ 모습 모여…탈근대 가족 신호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기러기 가족에 대한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조은 동국대 교수(사회학과)는 지난 5월 29일 또 하나의 문화 월례발표회에서 ‘초국적 가족/탈근대 가족:기러기 가족을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조 교수가 동기와 과정을 중심으로 분류한 기러기 가족 유형은 모두 다섯 가지. ▲미국 거주 경험이 없지만 엄마가 대학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고, 남편은 사업 등으로 경제력이 있는 경우 ▲해외유학이나 미국 거주 경험이 있고 남편이 해외 상사나 교환교수로 왔다가 부인과 아이들만 남은 유형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보냈다가 엄마가 방문비자로 와서 눌러 앉았거나, 아이들 건강이 안 좋아 시험적으로 왔다가 눌러앉은 경우 ▲남편이 사업 등으로 거래처를 두고 있어 부인과 자녀를 보낸 유형 ▲부인이 미국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아이가 미국에서 출생한 경우 등이다.
기러기 가족이 되는 동기와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조 교수에 따르면 기러기 가족의 기본 구도는 ‘영어되는 엄마’와 ‘돈 있는 아빠’의 조합. 30~40대에 돈 있고 영어되고, 외국생활을 겁내 하지 않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기러기 가족에게 보이는 또 하나의 특이점은 가족의 중심이 ‘자식’이라는 점. 기러기 가족 인터뷰에서 부인들은 한결같이 “아이 중심이니까 오지 아빠 중심이면 못 오죠”라고 답한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워크홀릭이어서 여자 문제는 안 생길 것”이라며 남편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낸다. 또 “사랑하지 않는 건지 신뢰가 너무 큰 건지 모르지만…”이라고 말하며 부부 별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기러기 가족에서 아빠는 돈을 보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없어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존재’다. 엄마와 아이들은 굉장히 친밀하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하다. 또 기러기 아빠가 한국에 처한 위치도 매우 애매하다. 조 교수가 조사한 사례의 절반 정도는 친가로 들어가 어머니의 밥을 먹고 산다.

조 교수는 이러한 기러기 가족이 ‘도구적 가족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간 가족 이기주의로 비판 받아온 가족주의가 부부 관계를 희생하는 가족주의, 친밀함과 애정적 관계를 대신하는 새로운 가족주의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가족, 불안정한 부부생활을 토대로 한 안정된 가족의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게 기러기 가족의 모습이다.

조 교수는 기러기 가족이 전근대적인 요소와 근대적인 속성이 착종됐다고 본다. 기러기 가족을 살펴보면 한편으로 자녀 중심의 근대 가족의 외피를 갖췄지만, 애정 관계에 기반한 근대적 부부 중심 핵가족의 기본 틀에서는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관계와 가족조직의 원리는 부계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반한다.
탈근대적 속성 역시 자리 잡고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가족의 거주, 세계적 자본축적 과정에 포섭된 가족 전략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유연적 시민권에 대한 경도 등, 탈근대 문화 논리가 기러기 가족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기러기 가족이 ‘강한 가족’을 완성해 나갈지, 탈근대 가족의 신호탄으로 볼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리 이민선 기자 dreamer@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