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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잔해 위에서 나는 누구와 나의 삶을 이야기할 것인가
공동체의 잔해 위에서 나는 누구와 나의 삶을 이야기할 것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21.0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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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지음 | 당대 | 279쪽

문학비평의 창으로 ‘공동체’를 탐구하다

이 책은 무너지는 공동체에 주목한 저자가 지난 15년간 문학의 시각에서 탐구한 작업을 모아 엮은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 때 등장한 피란공동체부터 200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이주민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붕괴되어 온 우리 공동체의 흐름을 조망한다. 그 지속적인 붕괴의 결과를 저자는 ‘공동체의 폐허’로 표현한다.

한국사회가 겪은 전쟁과 근대화는 한국사회의 근간을 뒤흔든, 물질적·정신적인 체제를 전환시킨 그야말로 강력한 폭풍이었다. 이 폭풍에는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폭풍의 강렬함은 모든 것을 뒤집어놓은 것에만 있지 않다. 이 폭풍이 기왕의 것들을 무력화시키고 폐허로 만들어버리면서도 잔해로 남은 것들의 고통과 슬픔을 결코 드러낼 수 없도록 만들었다. 폭풍이 할퀴고 간,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의 깊은 슬픔이란 ‘나’의 존재, 정체성을 부여받았던 기왕의 권력적 가치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타인을 증오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다. 근대화의 발전과 성장 신화는 구성원들이 문제를 공동화하고 이를 해소·해결할 수 있는 자치능력을 탈취, 자생력을 질식시킨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성장신화의 동력으로 폭주하는 기차를 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폭주하는 기관차의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없는 혐오의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다.

이 무너진 공동체의 폐허 위에서 저자는 묻는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근대화가 야기한 문제는 정치, 경제 등 거시적 차원만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변화였다. 그것은 나의 삶을 함께 이야기할 이웃과 동료를 적대화하는 과정이었고, 개인은 전환에 따른 모순을 ‘홀로’ 감당하도록 내팽개쳐진 것이었다. 나의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의 장소를 박탈당하고 타인과의 관계가 무너져내린 잔해 위에서 우리는 누구와 나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책의 구성과 내용

1장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유지해 온 공동체가 국가적 폭력에 의해 절멸되는 과정을 고찰한 것이다. 일제강점, 전쟁, 산업화 등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한 구성원과 형태의 공동체였다. 국가권력은 공동체를 통해 국가의 명령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개인의 일상에 개입해 왔다. 오늘날 ‘홀로 선 개인’은 공동체를 국가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개인의 생존을 이웃과 함께 공론화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을 국가가 모두 탈취한 이후, 남은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홀로 선 개인들’은 과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과 이웃의 삶이 파탄에 이르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해 왔던 것처럼 촛불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오늘 우리가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들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2장에서는 ‘피란수도’라는 부산의 특별했던 과거를 돌아보아 공동체를 위한 공간의 방향성을 살폈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문인들이 부산으로 피란해서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부산을 그렸다. 결코 긍정적일 수 없는 피란이기에 작가들은 대체로 절망과 불안, 공포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재현했다. 문제는 그들이 재현한 결과를 사실로, 그리하여 부산의 실제로 오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산은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피란수도 부산은 한 국가의 중심이 해야 할 기능, 즉 중심은 사람과 타지역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개방적이고, 특히 약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끌어안아 그들이 ‘살아가도록’ 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질적인 것들에 개방적이고 그들을 무한히 수용했던 피란수도 부산의 경험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공공성, 공동성의 공간적 가치를 재고하는 데 근간이 될 것이다.

전쟁이라는, 삶의 근간이 뒤흔들린 절망적 상황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던 공동성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ㆍ산업화 과정에서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3장에서는 경제성을 삶의 총화로서만 다루면서 전국민을 생존기계로 전화한 빈곤통치의 양상을 살폈다. 빈곤에 분노하고 빈곤을 적대, 수치심으로 전환한 빈곤통치의 가장 큰 폐해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치공동체를 훼손·파괴하는 일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그 어떤 공동체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문학은 빈민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의 장소가 우리 내부에 존재해 있음을, 국가의 지배력을 비켜서는 자치공동체의 영역이 있음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1960~70년대 국가의 기획과 목표에 따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 뿌리째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들을 보호할 관계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빈민의 의의를 살피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경제성만으로 우리의 삶을 결정하려는 시도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자유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1980년대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저항해 작은 사람들이 연대함으로써 현실을 개혁하겠다는 열정이 폭발했던 때이다. 4장은 노동소설을 재독(再讀)하여 노동자들을 결집시키고 함께 싸우게 했던 힘을 고찰해 본 것이다. 노동소설에 나타난 현실개혁 의지에는 오늘날 노동자가 연대할 수 없는 한계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꿈꾸는 ‘더 나은 삶’에 대한 방향성 부재, 노동자문화를 그들의 현재적 삶, 일상과 연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 노동자의 기대와 희망이었던 ‘더 나은 삶’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가져와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해야 한다.

5장은 2000년대 이후 한국이 당면한 공동체의 현안으로서 다문화사회에 관한 것이다. 특히 외국인노동자와의 공존과 연대의 노력이 방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에도 그들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한국인의 배타적 시선의 근원으로 뿌리 깊은 단일민족주의를 꼽는다. 그런데 외국인노동자의 문제는 지역민의 중요 현안이다.

외국인노동자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노동자와의 관계에서 지역민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 타자에 관한 한 그 주체는 언제나 ‘한국인-한민족-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와의 관계를 지역적 현안으로 전환하는 일, 즉 그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 우리는 타자와 더불어 자신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공동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6장은 김주영 소설 읽기를 통해 한국의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글이다. ‘근대’ ‘근대성’은 나의 연구의 시작점이었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은 마을·지역·생활 공동체의 의사결정력, 자치역량을 분쇄하고 국가의 명령체계가 개인의 일상에 효율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조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주영의 문학적 실천의 변모양상을 살피는 것은 그의 소설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되돌아볼 근거를 제공받기 위함이었다.

김주영은 한국의 1970~80년대 자본주의적 가치체계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심각한 계급적 갈등에 천착했다. 그 반성지점은 모든 가치가 동일성으로 획책되는 가운데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있었던 변두리 공간, 도둑이나 넝마주이, 거지 등 외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서 찾았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소설은 크게 변화하는데 이 지점이 한국사회의 축적체제의 전환과 맥을 함께한다. 사회적 총체성 구현을 위한 일련의 작업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김주영은 중심을 향한 총체적 인식과는 무관해 보이는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그리고 아이의 시선에 의지한다. 이러한 서사는 우리 사회가 일구어낸 왜곡된 근대성의 부박함을 전통적 질서로 반추함과 동시에 악성화된 남성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날 심미적 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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