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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기술사회를 보는 몇가지 시선 : 『테크노폴리』(닐 포스트먼 지음, 민음사 刊)과 『페미니즘과 기술
[테마] 기술사회를 보는 몇가지 시선 : 『테크노폴리』(닐 포스트먼 지음, 민음사 刊)과 『페미니즘과 기술
  • 김환석 국민대
  • 승인 2001.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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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16 00:00:00
김환석 / 국민대·사회학

기술이 이미 사회의 지배적 특징으로 자리잡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좋건 싫건 기술과 자신의 삶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철학자와 사회이론가들이 기술과 인간의 삶의 관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는 것은 따라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상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이 기술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매우 상반된 견해들을 제시해 왔으며, 기술사회가 성숙기로 접어든 오늘날에도 그런 견해들의 거리가 좁혀지기는커녕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분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테크노폴리’의 기술비관주의
계몽사상과 산업혁명 이래 기술의 발전을 ‘진보’와 동일시하고 따라서 인간해방의 열쇠로 간주하는 낙관주의가 최근까지 기술사회에 대한 지배적 시선이 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기술의 합리성이 인간을 무지와 가난과 질병과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는 원대한 희망은 근대를 관통하는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이러한 낙관주의가 빛이 많이 바랜 상태이지만, 서구를 선망하며 ‘근대화’를 통해 발전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제3세계와 우리나라에서는 기술 발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아직도 팽배해 있다고 보여진다. 더 나아가서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담론으로 전세계에 걸쳐 유포되고 있는 ‘정보사회’와 ‘생명공학시대’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이러한 시선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위와는 정반대로 기술의 지배가 낳는 인간 소외, 환경 파괴, 군사주의 등에 주목을 하면서 기술사회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시선이 하이데거, 프랑크푸르트학파, 엘륄, 북친 등의 사상가들에 의해 강력하게 제기되어 왔다. 닐 포스트먼의 ‘테크노폴리’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비관주의적 시선에 서서 기술사회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는 책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 그는 인류의 문화가 ‘도구사용문화’(tool-using culture) 쭭 ‘기술주의문화’(technocracies) 쭭 ‘테크노폴리’(technopolies)로 진화를 해왔다고 주장한다. 먼저 ‘도구사용문화’는 17세기 이전의 모든 인류의 문화들과 현재 제3세계 지역의 상당 부분이 이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도구는 삶의 구체적 문제해결이나 상징적 세계에 봉사하기 위한 것일 뿐 기존의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지적한다. 즉 문화적 신념과 도덕 안에서 도구의 발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기술주의문화’에서는 기계화와 실용적 가치관에 입각한 자유주의, 개인주의 등이 급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도덕과 철학에서는 도구사용문화의 그것이 남아 있어, 결국 기술적 세계관과 전통적 세계관이 불안한 긴장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테크노폴리’ 단계에 이르면 기술적 세계관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안은 사라지며 무의미한 것으로 변한다. 종교, 예술, 가족, 정치, 역사, 진리, 프라이버시, 지성 등의 의미는 기술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규정되며, 삶의 의미를 오직 기술에서만 찾는 전체주의적 기술문화가 되는 것이다. 저자인 포스트먼은 현재 테크노폴리가 이루어진 것은 미국뿐이지만, 일본과 유럽 국가들도 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신속히 바뀌고 인간의 진보가 기술의 진보로 대체된 불가능할 법한 세계, 우리 대부분에게 있어 더 이상 이해가 불가능한 세계, 그리고 아직도 수백만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도시의 범죄율이 치솟고 질병이 만연하며 이혼율이 급등하고 정신병원에 환자들이 가득차는 이 ‘테크노폴리’의 세계에 대한 치유방법으로 포스트먼이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다소 실망스럽게도 그는 “인간성의 상승을 위한 교육”이라는 낭만적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과 정보만을 주입하는 교육 대신에, 인간의 지적/도덕적 구심점을 세울 수 있도록 역사, 과학적 사고, 훈련된 언어사용, 예술과 종교에 대한 폭넓은 지식, 인간이 지닌 탐구정신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교육이야말로 테크노폴리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먼의 틀에서는 ‘도구사용문화’가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문제지만, ‘테크노폴리’에서 이미 공고한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이 “인간성의 상승을 위한 교육”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선택 무력화시키는 기술결정론
나는 처음에 소개한 기술낙관주의는 물론이고, 이와 상반된다고 생각되는 포스트먼같은 기술비관주의도 사실은 동일한 종류의 잘못-즉 ‘기술결정론’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결정론’이란 기술 자체는 사회와 무관한 어떤 내재적 논리와 발전법칙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기술이 필연적으로 사회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고 보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에서는 기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비판이 나올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기술과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개입과 선택의 행위를 무력하거나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기술결정론에 대한 대안적 시선으로서, 기술과 사회는 우리의 실천에 의해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는 적극적인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1980년대부터 나타난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이다. 와츠맨의 ‘페미니즘과 기술’은 이 사회적 구성론의 관점에서 젠더와 기술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제3의 시선 ‘사회적 구성론’
사회적 구성론은 기술이 초사회적 합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회적 갈등과 협상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주는데, 특히 페미니스트접근은 사회적 차원중 가장 뿌리깊고 편재하는 젠더 요인이 기술의 창출과 활용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와츠맨은 책에서 이러한 작업을 생산기술, 생식기술, 가사기술, 건축환경 등의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적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의 문화적 측면이 남성성에 결부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예리한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와츠맨은 남녀간에 권력의 분배방식이 기술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성평등적인 기술의 창출과 활용을 위해서는 기존의 성별 권력구조에 도전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대안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기술활동의 모든 영역에 보다 많은 여성이 참여하여 남성의 기술지배에 도전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성성/여성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에 입각하여 기술을 재구성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사회적 구성론에 입각하여 와츠맨이 제시하는 이러한 대안은, 포스트먼같은 기술비판이 흔히 빠지는 비관주의 대신에 실천의 여지를 훨씬 폭넓게 인정하는 희망의 전략이다. 지금의 기술사회가 젠더와 계급과 인종과 군사주의 등에 의해 깊게 각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존의 기술사회를 전면 거부하거나 혐오만 한다는 것은 올바른 실천이 못된다. 바람직한 대안적 가치와 문화에 의해 기술사회를 재구성하려는 ‘사회적 구성론’이라는 제3의 시선을 통해 지배적 시선에 도전할 때, 파괴적 기술사회가 낳는 온갖 위험과 비극들을 극복할 활기찬 가능성이 비로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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