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1:30 (금)
[화제의 책]『고개숙인 수정주의』(전상인 지음, 전통과 현대 刊)
[화제의 책]『고개숙인 수정주의』(전상인 지음, 전통과 현대 刊)
  • 신복룡 건국대
  • 승인 2001.04.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4-16 00:00:00

신복룡 / 건국대·정치사
상이 커밍스(B. Cumings)의 열풍으로 가득 차고, 조금 세월이 흐른 후에는 ‘커밍스의 아이들’이 위로 치받고 아래로 걷어찰 적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펴가면서 자신의 위치를 지킨 학자로는 아마도 전상인 교수 만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러한 그의 입장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나온 것이 곧 ‘고개 숙인 수정주의’인데 이번에 단행본의 출판과 함께 그의 글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로서는 논문 찾는 번거로움을 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간 그의 학문의 蘊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반갑다.

무엇이 그를 한눈 팔지 않고 이토록 자신의 입장을 지탱하도록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역사사회학에 관한 그의 확신이었을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사학계에서는 역사의 범주에서 현대사를 등한히 하는 경향을 보이고 정치학에서는 권력의 문제에 집착하는 동안, 농촌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옮겨가는 한국에서의 정치사의 문제를 단순히 역사학과 정치학의 물리적 결합으로써는 풀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면에는 무어(B. Moore)적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과학자들은 정치사의 연구 방법으로 역사학과 사회학의 결합을 생각했다. 그들은 역사가 순수하게 자유 의지의 산물도 아니며 결정론적 메커니즘의 산물도 아닌, 개인의 행위와 결정이 매우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적 실재에 의해 조건지어진 거대한 사회적 힘을 확인하면서도 인간이 중심이 된 역동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힘을 포착할 수 있는 방향에서 전통적인 역사의 방법과 사회과학의 방법은 긍정적으로 결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역사사회학이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오늘의 시각에서 우리는 해방전후사를 인간의 삶과 사회의 총체적 역사가 되도록 기술할 수 있는가? 그들은 역사사회학이 역사학과, 사회학과 정치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역사사회학은 사회학의 추상적 이론화와 몰역사적 현재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학의 서술적 비과학성과 과거 집착적 사실주의를 수정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사회학은 사실이라는 천연 자원을 발견하거나 발굴하여, 그것을 다시 사회학적 개념이나 이론, 혹은 인과적 규칙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사회학은 역사학의 거듭나기를 촉구할 뿐만 아니라 사회학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역사학에게는 이론적인 각성을 촉구하면서 스스로에게는 史實로 무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학자가 곧 전상인 교수이다. 그는 최장집과 그의 門弟들이 정치사회학적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는 다소 달리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의 종결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사란 역사나 권력만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역사사회사라고 부르면서 권력 구조나 통치 기구에 몰두하던 종래의 정치학에서 벗어나 ‘사람 냄새가 나는’ 해방 정국의 삶의 모습을 그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상인 교수를 포함한 역사사회학자들은 훌륭한 실험 정신으로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만남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은 역사학 쪽으로 더 다가가기를 멈칫거리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역사적 주제의 실상을 그리는 능력이 그들의 이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회 과학이 랑케(Leopold von Ranke)의 완벽한 제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사실을 천착하려는 노력이 이론의 연구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균형 있는 역사사회학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진정한 역사사회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지금 사회과학 쪽의 8부 능선에서 역사학 쪽을 향하여 적어도 6부 능선까지 자신의 위상을 이동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학문에 몰두하다 보면 거대 역사(grand history)를 간과할 위험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분과학으로서의 정체성에 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