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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늦게 알게 되는 것의 즐거움
가장 늦게 알게 되는 것의 즐거움
  • 김진송 목수
  • 승인 2004.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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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 나쁜 일이 아니다. 그게 지나쳐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재빨리 그것을 손에 넣거나 알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안달을 한다. 그것 역시 나쁜 일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날이 바뀌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물건들은 상자 속에만 갇혀 있을 것이다. 자본의 상술이 됐든, 현대의 일상이 됐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를 역동적인 사회로 만들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엇이든 배우고 싶어 하는 현상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어쩌면 배우는 것에 길들여지는 것은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뭐든 배워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가장 늦게 배운 도둑질이 가장 무섭지 않겠냐고 말하면 재미없는 농담이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배우려는 열의에 가득한 기특한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나에겐 곤혹스러운 일이다. 간혹 작업실로 찾아와 나무일을 배우고 싶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무슨 말로 그 갸륵한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무얼 남에게 가르치는데 필요한 자상하고 친절한 품성을 갖지 못한 것도 그렇거니와 도무지 남에게 가르쳐야 할만한 건덕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권력의 속성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다. 때로 가르친다는 것의 권위와 배운다는 것의 비굴함이 상투화될 때 지식과 정보는 왜곡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현대를 계몽으로 시작한 이래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절대적인 善으로 여기게 됐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 할 일도 꼭 배우려드는 것은 어쩌면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기특한 일이라고 부추기는 사회적 심리가 잠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배워야 할 것들은 배우지 않았을 때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때도 없지 않다. 나처럼 몸을 써서 하는 일의 기술이란 더욱 그렇다. 가르침의 절차와 배우는 과정은 그 내용과 별개로 권위와 복종, 다른 말로 하면 우쭐거림과 열등감으로 범벅이 될 경우가 태반이다. 컴퓨터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어본 사람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안다. 아주 간단한 사실을 친절하고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참을 수 없는 우쭐거림을 말이다.

나무작업이 그럴듯하게 보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되 “그런 일을 나도 배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럴 때 “그냥 하면 되요”라고 말한다. 그게 꼭 남을 가르치면서 오게 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주섬주섬 말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나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겁을 주는 식이다. 우선 木理를 알기 위해서는 다루는 모든 나무의 성질, 결의 방향, 강도, 빛깔, 휘어짐과 갈라짐의 정도 등등에서 건조와 마름질하는 등의 건사방법까지를 익혀야 한다. 또 기본적인 공구의 종류와 쓰임새 그리고 사용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지 않으면 안된다. 그 뿐인가. 물건을 만들기 위한 제작과정과 마감처리 방법을 익히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목물의 구조와 형태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와 미적인 감각을 두루 배우고 익히려면 몇 년이 걸려도 모자랄 것이다. 그걸 언제 가르치고 배운단 말인가.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면 재료학에서 미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해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이며 아마 열이면 아홉은 둘 중에 하나가 지레 포기해버리고 말 것이다 라는 등등.

하지만 매우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말 그대로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나무를 만지면서 목리는 저절로 알게 되며 망치와 대패를 거꾸로 잡고 쓰는 바보는 없기에 연장 다루는 방법을 따로 배울 이유가 없다. 물건을 만들어 내는 디자인과 형태는 목리와 구조가 스스로 만들어 낼 것이며 미적인 아름다움이란 마음에 들면 그뿐이다 라고.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곧이듣지 않는 사람은 대개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꼭 무얼 배워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단지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일 뿐이다.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컴퓨터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야말로 그게 업이 되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정말 컴퓨터가 필요한 사람들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쓴다. 그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시작하고 난 한참 후의 일이며, 어쩌면 배워야 할 것을 이미 알게 된 이후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장 나중에 아는 것이 가장 많이 알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먼저 배우고 시작하면, 시작하면서 알게 되는 즐거움을 놓쳐버릴 수 있다. 가장 먼저 아는 것이 가장 늦게 아는 것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 저절로 알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게 가장 빨리 알게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배우려 덤벼드는 사람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김진송/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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