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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라크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것은 이라크에 '관한' 책이 아니다
  • 김정한 서강대
  • 승인 2004.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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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이라크』|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성민 외 옮김| 비 刊| 2004

▲ © yes24
마키아벨리의 ‘군주’가 군주에 관한 책이 아니듯이, 혹은 맑스의 ‘자본’이 자본에 관한 책이 아니듯이, ‘이라크’는 이라크에 관한 책이 아니다. ‘군주’가 인민의 관점에서 군주의 정치적 기예를 폭로하는 것이라면, ‘자본’이 노동의 편에서 자본의 착취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라면, 이 책은 실재의 자리에서 현대 사회의 상징적 좌표(부인된 믿음과 가정들)을 비판하고, 근본적인 정치적 행위의 윤리(학)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라크 전쟁이 단순히 소재인 것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해방의 잠재력을 길들이려는, 새로운 제국인 척하면서 무자비한 민족국가로 행동하는 미국이 전 세계에 자신의 헤게모니를 주장하는 메시지이며, 따라서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상징적 좌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좌파적 기획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의 금융세계화, 포스트 9?11시대에 지젝이 촉구하는 근본적인 정치적 행위(act)란 기존의 상징적 좌표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발생시키는 행위, 이런 불가능한 것의 실연 속에서 전략적으로 가능한 것의 좌표를 변화시키는 행위다. 오늘날의 상징적 좌표는 중립을 가장한 전문 지식(대학 담론)을 통해 권력을 정당화하는 테크놀로지의 지배 논리를 중심으로 조직돼 있으며, 우파는 말할 것도 없고 좌파 또한 이런 좌표에 갇혀서 아무런 이상도 대의도 없는 정치적 실용주의와 회의주의만을 추종하고 있다. 진정한 정치적 행위란 이런 상징적 좌표를 벗어나 그 외부를 향해 한걸음 내딛는 일이며, 이를 통해 현재의 상징적 좌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행위가 ‘악명 높은’ 실재의 자리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라캉의 실재(the Real)가 칸트의 물자체와 다를 바 없다는 통상적인 비판과는 다르게, 실재는 인지할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가 아니다. 실재는 단지, 기존의 상징 질서가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 자신의 내부에 있지만 끊임없이 외부로 밀어내려고 하는 것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실재의 다른 이름은 적대(antagonism)다. 현대 사회의 상징적 좌표를 규제하는 민주주의가 ‘적대를 갈등/경쟁(agonism)의 게임에 흡수시키는 규칙’이라고 정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경쟁 규칙’을 지키는 한에서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 게임 규칙의 위반을 배제하는 상징적 기제다. 물론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가 은폐하고 중화하려는 적대들의 핵심에 위치하는 것은 계급 적대이며, 지젝은 계급투쟁이 여타의 적대들을 과잉결정하는 구조화 원리임을 주저 없이 승인한다.

‘맑스주의(또는 레닌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이 선명히 드러나는 이 책은 지젝이 (초기) 알튀세르의 이론적 기획의 연장선에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지젝은 알튀세르를 모르는 척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다.

김정한 / 서강대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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