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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美를 논하다_7: 퓨전의 미학
우리시대 美를 논하다_7: 퓨전의 미학
  • 정윤수 문화평론가
  • 승인 2004.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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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상상력일 수 있는가

[편집자주]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세 중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보편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퓨전'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장르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기존의 고정된 성격을 뒤흔들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창조하려는 욕망은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퓨전'이 미학의 한 형식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고, 각 예술장르별로 퓨전적 시도가 어떤 현황과 한계지점을 형성하고 있는 지를 짚어봤다.

퓨전은 하나의 현상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원이 정확히 가리키듯이 특정한 장르적 경향성이나 예술적 특장과 관련 있는 게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다. 이 점에 대해 ‘퓨전'에 대한 자의식이 강한 어떤 사람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바로 그렇기에 이종결합의 무규칙 예술행위는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는 퓨전이 장르가 아니라 어떤 상이한 요소들의 결합이나 충돌에 의한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특정 경향에 정박된 문화적 관습을 흔들다

어원에 대한 참고적 주해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실질적인 의미는 오늘의 우리 문화 현실에 비춰 퓨전을 되새겨보는 데 있다. 왜 우리의 문화적 자장에서 퓨전은 꽤 상당한 수준에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을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지형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전지구적 차원의 문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는 한반도의 삶을, 좀더 구체적으로는 ‘현대'를 질주하는 우리의 삶을 지난날의 영토지리적 개념에서 인문지리/문화지리적 차원으로 확대하는데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영향은 특정한 예술행위가 한반도의 지리적 경계 속에 포함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미 전지구적 규모의 문화 변화에 편입돼 있는 한반도의 객관적 현실 속에서 퓨전은 ‘늘 새로운' 어떤 경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문화적 측면에 있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급속하게 전개되면서 우리는 기존의 문화예술의 범주에 대해 이미 현실 속에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세대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이 역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기존의 수직적 관계, 즉 문화 생산자와 매개자, 그리고 그 수용자의 계열화된 관계를 재편한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문화 흐름이란 그저 예쁜 미니 홈피를 꾸미느냐 아니냐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기존의 예술적 개념과 관성을 별다른 고민과 자의식 없이 잊어버리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이다. 퓨전의 이음동의어랄 수도 있는 엽기나 플래시몹의 급속한 유행 역시 특정의 장르적 경향에 정박됐던 문화적 관습을 가볍게 흔들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여민주주의 확대와 정치적 감수성의 변화가 있다. 물론 이 사항은 문화에 대해 직접적으로 발언을 하진 않는다. 그러나 문화적 행위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고 그 정치적 변화를 문화적 프리즘으로 해석해내는 이른바 ‘월드컵'과 ‘촛불 시위'의 세대들에게 있어 퓨전은 하나의 능동적인 무기이자 ‘방법'이 되는 셈인데, 이 변화된 감수성의 세대에게 있어 이를테면 고전적인 예술범주란 매우 낡은 그릇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 감수성의 변화와 인식틀의 재론

이와 같은 조건의 변화는 문화적 범주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범주를 가능케 했던 기존의 인식 틀마저 재론할 것을 요구한다. 이미 오래전에 논쟁이 된 바 있는 사항이지만, 요컨대 '모더니즘 vs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립항이 그것인데 이 논쟁의 핵심이 되었던 '중심 vs 주변' 혹은, '중심 없는 다양성'의 문제제기가 바로 퓨전 현상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기존의 예술 구획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중요한 잣대가 됐던 ‘고급 문화 vs 저급 문화', ‘주류 문화 vs 하위 문화', ‘중심 문화 vs 주변부 문화' 등의 이분법적 논쟁이 자연스럽게 문화적 일상 속에서는 퓨전이라는 현상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효과, 혹은 그 파생 효과가 건강하며 생산적인, 진정한 의미의 상상력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명제는 중심과 주변을 가르고 주류와 하위를 구분해 일종의 문화적 권력을 행세하려는 기존의 문화 패러다임에 대한 강력한 안티 테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이른바 ‘퓨전 현상'을 주도하는 그룹의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인 상상력에 면죄부마저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요소의 기계적인 결합, 최소한의 형식논리성조차 말하지 못하는 단순한 물리적 만남, 화학적 결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기계화된 관념적 퓨전들. 예컨대 국악기와 양악기가 무대에 나란히 서기만 하면 ‘동서양 문명의 크로스 오버' 식으로 습관적으로 말하는 방식, 혹은 그렇게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화학적 결합은커녕 최소한의 물리적 즐거움도 주지 못하는 경향성을 자주 발견하거니와 이제 '퓨전'은 하나의 현상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장르에 대한 숙련된 연마와 이질적 장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도모한 것인지 하는 지렛대에 올라서고 있는 참이다.

정윤수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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