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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어떤 肖像
스승의 날, 어떤 肖像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5.1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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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승이 아니다'

성신에 전임으로 부임한지 만 10년이 지났다. 3백여 명의 학생이 입학하고 졸업했다. 나는 그들의 스승이었고, 그들은 나의 제자였는가. 법률적으로는 나는 교수였고 그들은 학생이었으니, 사제지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제관계는 그런 강제규정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데서 우러나는 존경과 사랑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학생들로부터 자연스레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하였는가.

먼저 교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격으로 전문적인 지식은 갖췄는가.
대학시절 4년 내내 한문 공부에 매달렸고, 그 이후에도 한문과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는 것은 쥐꼬리만 한데 모르는 것은 태산보다 높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때로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철학인들 제대로 하겠는가. 여러 先儒들의 글을 이해하기도 벅찬데 어느 세월에 내 것을 만들어 내겠는가. 대학시절부터 꿈꿔 온 세계철학은 어느 세월에 이루겠는가. 백발은 늘어나고 눈은 침침해지는데……

이렇게 된 것은 물론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이지만, 핑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공부는 체계적인 순서에 따라 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까지 그럴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 중등학교 때는 물론이요 대학에서도 그저 백화점식으로 늘어놓기만 하였지 차근차근 실력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이리 닫고 저리 뛰면서 세월만 보낸 것이다.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공부는 모래성 쌓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든 것이 없으면 사람이라도 되었는가.
지금까지 그 사람 못되었다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려고 하였지만, 자기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성질나는 대로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며, 자신을 속이고 君子然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디 그 사람 괜찮다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강철 같은 의지로 성현들의 말씀을 귀담아 克己復禮해야 할 것이지만, 내게는 그런 의지도 용기도 없다. 栗谷 선생이 모든 공부의 시작은 立志에서 시작한다고 한 말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말은 좋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말로만 들리니 이를 어찌하랴! 그래도 사람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사랑하기는 했는가.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해 이리저리 고민하면서 애써봤지만 그 관심이 고루 미쳤는지 의심스럽다. 방황하며 힘들어하는 학생과 마주 앉아 함께 고민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기억도 없다. 부질없이 동분서주 하면서 학생들을 위하는 척만 한 것은 아닌가.

오히려 내가 학생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닌가. 그것은 아마도 나의 관심과 보살핌을 갈망하는 학생들의 손짓일 게다. 그 눈빛을 저버리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좀 더 열심히 학생들을 위한 일에 나서야겠다.

아는 것 많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엄마만이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지극한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니 자식들은 무럭무럭 잘 자란다. 엄마를 닮지 않고, 엄마를 넘어서서 더 훌륭한 사람으로 자란다.

주어진 제목이 잘못됐다. 나는 ‘스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법률의 보호 속에 안주하는 교수일 뿐이다. 강의실을 벗어나면 그저 지나가는 아저씨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존경이 있을 리 없다. 받을 자격도 없다. 그러나 무식하고 못된 어미도 자식은 키운다는 심정으로 우리 학생들에 대한 사랑만이라도 퍼 부어야겠다. 내 자식 흠빨고 감빨며, 남의 자식 내 박치는 엄마처럼, 우리 학생들을 끌어안아 키워야겠다.

나는 스승 아니다. 그러나 靑出於藍而靑於藍(푸른 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이라 하였으니, 우리 학생들이 나보다 낫기를 바라며 사랑이라도 베풀어야겠다.

윤용남 /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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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2004-05-19 21:47:35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현재까지 한교수님 밑에서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7년이라는 세월을 한분만을 위해 충성하고 있으나
제 마음같지 않군요. 수많은 불이익과 후배들 앞에서의 질타(전혀 문제되지 않는 일로 ?)그 스승을 떠나고 싶습니다. 학교를 그만 두고 얼굴 안보고 살았으면 합니다. 스승이 여자이기에 많이 참고 견디어 왔지만 인간의 한계에 온것 같습니다
학문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참사랑이 아닌가 쉽군요. 같은과에 재직중인 교수님들 조차 제가 멍청하다고 하면서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이 좋지 않냐고
하는데 스승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어 걱정이 태산입니다
현재 고민중에 있습니다.
글을 쓰신 교수님의 글처럼 제자들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제자들에게 인간적이고 때로는 기대 보세요
되려 제자들이 스승께 참사랑을 주려고 할것입니다
저의 나쁜마음이 사라지길 바라며 좋은 의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