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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불안, 불화가 만드는 불협화음 ‘비명’
풍요, 불안, 불화가 만드는 불협화음 ‘비명’
  • 김재호
  • 승인 2020.12.18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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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풍요중독사회』 김태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88쪽

 

돈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불안과 불화
거주지 분리의 시대를 사는 노동자들의 유목
결국은 풍요중독에 빠지고 마는 악순환 발생

원래 경기도 인근에 살던 기자는 최근 직장 출퇴근 문제로 서울로 이사왔다. 이 때문에 이전에 살던 이웃들과 멀어졌고, 새로운 곳에 오면서 일만 하다보니 이사온 곳의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부족해졌다. 『풍요중독사회』의 김태형 저자는 ‘거주지 분리의 시대’를 지적한다. 먹고 살기 위해 분주히 공간을 이동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같은 집단 내에서 연대감을 갖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부자와 빈자의 거주지 분리 또한 심리적 간격을 극대화 한다. 

김태형 저자는 현재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가 풍요에 중독돼 불안과 불화, 자기혐오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풍요-화목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1990년대 이전까지의 한국은 가난했지만 서로 챙겨주는 화목한 사회였다. 하지만, 21세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풍요롭지만 혹은 풍요를 지향하지만 불화하는 사회가 됐다. 위계상 제일 하층에 있는 노동자들은 풍요롭지도 못하면서 공동체 혹은 같은 노동자 집단과 연대하지 못한다. 이를 김 저자는 풍요-불화사회라며, ‘인류역사상 최악의 불화’인 21세기형 불화라고 정의했다. 

21세기형 불화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다층적 위계에 기초한 심각한 불화다. 돈, 사회적 지위, 거주지역, 자가용, 자본가와 노동자, 노동자 내부에서의 불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수많은 위계로 사람들이 쪼개져 있다. 다른 하나는 위계 내 불화다. 친구와 친구는 수능 등급으로 나뉘는 관계고, 입사 동기는 실적과 성과로 승진이 나뉘는 관계다. 특히 더 무서운 건 조금만 더 불안하고 자신을 옥죄면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이다. 김 저자는 “다층적 위계 사회인 자본주의사회는 돈만 벌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소위 열린 위계이고, 자신보다 약간 더 높은 위계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경제적 불평등이 야기한 불안·불화

이 모든 문제의 기저에는 불평등이 자리한다. 불평등은 당연히 경제적 불평등이다. 불평등하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그토록 정의와 공정에 목을 맨다. 책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재산 소유자 최상위 1%가 우리나라 총재산의 약 4분의 1을, 최상위 10%는 약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2012년 기준, 토지의 경우 상위 10%인 500만 명이 전체 사유 토지의 97.6%를 갖고 있다. 전 세계로 확장해도 비슷하다. 2011년 기준 상위 10% 부자가 전 세계 부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기자 역시 돈을 버는 이유가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좀 더 상승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 것 같다. 더 잘 나보이고 싶은 욕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은가. 불안하지 않기 위해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려는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불안과 불화가 심해진다. 김태형 저자는 “21세기의 인류가 평등과 정의를 요구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과 정의가 인간의 건강한 삶과 행복에 필수임을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라고 비판한다. 2016년 기준,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는 34개 OECE 회원국들 중 밑바닥에 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갑질문화에 휩싸여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권위주의적 성향이 자리한다. 김 저자는 권위주의적 성격을 “전형적인 피학대 심리 중 하나를 개념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속 학대받다 보니 자신도 학대하고 싶은 권위를 원하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자신보다 위계가 높은 사람들에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사랑이 있어야 동일한 위계에 있는 이들과 연대할 수 있다. 아울러, 패배혐오와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회제도의 개혁이다. 다층적 위계 사회에선 모두가 승자이자 패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는 게 돈에 집착하다가 발생하는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풍요중독사회』는 저자의 내공이 상당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이 사회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쓰일 수 없었을 것 같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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