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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인가 전략인가...자기이야기를 하는 뮤지션
순수함인가 전략인가...자기이야기를 하는 뮤지션
  • 성기완 시인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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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비평 : 솔로앨범2집 '유리가면' 낸 가수 김윤아

성기완 / 시인·대중음악평론가

김윤아는 19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한국 가수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축에 속한다. 밴드 자우림의 멤버로서, 그리고 솔로 가수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매체에서 엔터테이너로서 활약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꼭 '재능있는'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일단 그녀의 재능은 '음악적' 측면에서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적으로 그녀의 욕심은 대단하다. 곡을 쓰고 가사를 쓰는 일 뿐 아니라 녹음과정에서의 일정한 디렉팅에 이르기까지, 음악이 생산되는 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

이런 그녀의 모습과 전통적인 '여가수'의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전통적인 여가수는 다소곳하고 여성적인 느낌을 앞세우거나 섹시하고 발랄한 인형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체로 직접 자기 곡을 써서 노래하는 가수들보다는 작곡가들이 써준 곡을 소화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런 순종적인 여가수의 이미지를 1990년대 들어 완전히 뒤엎은 가수가 바로 김윤아다. 물론 그녀의 선배들 중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 가수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영애, 이상은, 이은미 같은 가수들은 남자 위주의 록 공연장 분위기에서 남성 못지 않은 폭발력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겸비한 음악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된 것은 김윤아에 이르러서가 아닌가 싶다. 당차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남자에게 절대 지지 않을 듯한 그녀의 모습은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여성상을 반영한다. 음악적으로야 동반자이겠으나 이미지 상으로는 '자우림'의 다른 멤버들보다 김윤아의 모습이 전면에 부각된다. 여성 보컬리스트가 끼어 있는 밴드들도 많았지만 주로 다른 남자 멤버들의 음악적인 리드를 여가수가 소화해내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자우림에서는 김윤아가 다른 멤버들을 여러 면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 역시 1990년대 이후의 변화를 심플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적 단면이 아닐까 싶다.

김윤아의 이런 활기찬 모습과 자신감은 남성팬들 뿐 아니라 많은 여성팬들에게 공감을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가사는 순정파 작사가가 대신 써준 천편일률적인 사랑이야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제 여가수들이 남들이 써준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김윤아가 페미니즘적인 태도를 정치적으로 표명한 적은 별로 없어 보이나 이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성 뮤지션'이라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전략마케팅과 진정성의 절묘한 조화

물론 김윤아의 가사나 활동을 철저하게 순수한 자기 감성의 발로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늘 '전략'이 있다. 대중문화 판에서 자기 자신의 진정성을 일정하게 지켜내고 그것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경계선이 어디일까에 관해 김윤아의 활동은 늘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윤아는 급진적으로 인디로 빠지지도 않고 또 대중문화 판에서 급진적으로 상업화돼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하지도 않는다. 그 언저리 어디엔가 김윤아는 뿌리를 내린다. 그것은 김윤아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으나 상당히 전략적인 어떤 것을 구사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김윤아를 바라볼 때 이중의 태도를 취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음악적 재능과 자신감,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태도 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정치적 전략 속에서 치밀하게 계산되어 움직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솔로 앨범 '유리가면' 역시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앨범은 솔로로만 친다면 2집 째인데, 확실히 그 동안의 김윤아와는 조금 차별되는 성숙한 모습들을 담아 내고 있다. 이 역시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의 산물일 수도 있다. 헤어스타일만 해도 1930년대의, 예를 들어 윤심덕 같은 가수를 연상시키는 고풍의 것이다. 창법도 약간의 신파적 요소를 팬들이 느낄 수 있도록 조금은 드라마틱해졌다. 물론 거기에도 더 넘어가서 '뽕짝'이 되지 않을 만큼의 선이 있고 김윤아의 목소리는 그 선을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그것 역시 굉장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직 비디오를 봐도 1940년대 시카고 하드보일드 영화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옛날 리무진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로맨틱한 비련의 젊은 마님'이라고나 할까. 김윤아의 이미지는 복잡하거나 애매하지 않고 선명하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한 측면은 다른 어떤 때보다 잘 부각되고 있다.

대중의 취향을 넘어 더 깊은 곳으로

그렇다고 해서 활발하고 젊은 느낌의 록 뮤지션으로서의 김윤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번 5월에도 자우림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자우림의 공연은 김윤아의 로맨틱하고 고풍스러운 솔로 앨범 이미지와 관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좀더 여성적이고 세련된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솔로 활동에서 진화해가는 동안 여전히 그녀가 '헤이헤이헤이'라고 외치며 처음 등장했을 때의 발랄함은 자우림이라는 밴드를 통해 지속된다. 여성성과 건강미를 동시에 지닌 채 보다 성숙한 단계의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 그녀의 전략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전략은 대중적인 지지와 공감 속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김윤아의 일본에서의 활동 역시 관심의 대상의 하나이다. 보아의 성공적인 일본활동 이전에 이상은 같은 선배 뮤지션이 일본 음악계에서 음악성을 인정받은 적이 있었는데, 김윤아의 활동은 오히려 그 쪽을 보다 체계적인 홍보전략 속에서 계승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활동이 끊임없이 김윤아의 스케줄표를 채워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김윤아의 음악적 실력 때문이다. 어떤 분위기의 노래도 잘 소화해내는 적응력, 실황무대에서도 음정이 빗나가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정확성, 그리고 대중의 감각이 흐르는 방향을 짚어내는 상업적 감각 등을 김윤아 만큼 갖추고 있는 가수는 그리 흔치 않다. 김윤아는 확실히 국제적인 성공이 예견되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을 듯하다. 그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역시 음악적인 깊이이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궁리하여 대중의 취향 너머 깊은 곳에 있는 음악을 길어내는 뮤지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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