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20 (금)
어둡고 내밀한 무의식을 엿보는 시선들
어둡고 내밀한 무의식을 엿보는 시선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점가에 나온 정신분석·심리학 관련 서적들

정신분석, 심리학 관련서적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대부분이 번역서적들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두 학문의 활용범위가 많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 가령 최근 나온 '돈 그 영혼과 진실'(버나드 리테어 지음, 강남규 옮김, 참솔 刊)은 융의 원형심리학을 이용해서 돈의 역사와 본질을 훑어보는 특이한 책이다. 문화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 미시건대 교수가 쓴 '생각의 지도'(최인철 옮김, 생각의나무 刊)는 동양과 서양 사람들이 '인식의 구조' 면에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 지 실증적 표본조사를 기반으로 접근한 책이다. 이 책 역시 '집단심리'와 연관된 인간의 문화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돈 그 영혼과 진실'과 같은 맥락에 속해 있다.

최근에는 칼 구스타프 융의 저작들이 연달아 출간되고 있다. 2002년 말에 '원형과 무의식',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등 두 권을 출간하면서 시작된 융의 전집 번역발간은 올해 초 '인격과 전이', '인간과 문화'(이상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솔 刊)가 추가되면서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전문 영역 탈피, 인문교양적 특성 두드러져

여기서 지적할 수 있는 새로운 점은 융 심리학의 적용범주가 많이 넓어졌고, 그 수용 또한 본격화 양상을 띈다는 점이다. 기존 심리학 도서들이 인간관계에 대한 노하우를 충고하는 실용적인 측면에 치우치거나, 일부 문학이론으로 수용돼 작품 무의식 해석에 바쳐진 데 비해 요즘 나오는 책들은 문화사적 접근, 비교문화적 접근 등으로 인문교양적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심리학 대중서를 꾸준히 펴내온 최광선 경북대 교수의 '몸짓속에 숨겨진 마음의 비밀'(학지사 刊)은 몸짓, 손짓, 시선, 표정 등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담긴 인간의 본심, 정서, 욕구, 특징 등을 분석한 책으로 기호학과 심리학의 접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읽히는 측면이 있다.

인간의 심리를 포괄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읽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현대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더욱 다양해지는 것 같다. 이런 저변의 욕구는 정신분석의 거장들에 대한 리바이벌을 계속 이어지게 한다. 대표적인 이가 프로이트다. 프로이트 전집은 지난 1990년대 중반 국내에 소개됐지만, 최근 문화계에 불어닥친 프로이트 제자들(라캉, 지젝)의 '효도' 덕분인지 그 수요가 생겨나 최근 새로운 판형과 장정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용어의 불일치를 통일하고 교정교열을 다시 봐 완성도를 높였다. 출판사 측은 번역저본으로 삼았던 '펭귄판' 전집에 포함되지 않았던 프로이트 저작 2권을 추가로 번역하고, 라 블랑슈의 '프로이트 사전'도 번역해 전집의 대열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제자들, 그리고 펠릭스 가타리

프로이트는 사실 그의 제자들의 텍스트 속에서 계속 환기되는 측면이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 소개가 활발해진 슬라보예 지젝의 최근 저작인 '진짜 눈물의 공포'(오영숙 외 옮김, 울력 刊)도 번역돼 나왔고, 지젝의 부인이자 런던 정경대 교수인 레나타 살레클의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이성민 옮김, 비 刊)도 최근 번역됐다. 지젝의 책은 한마디로 라캉 다시읽기와 영화읽기를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특히 그는 라캉주의를 환원주의, 상징적 질서주의라며 반대하는 서구의 '포스트-이론가'들의 반발에 정면으로 맞서서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십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등을 라캉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젝이 라캉과 다른 점은 예술에 나타난 계급투쟁의 양상을 라캉의 이론을 통해 도출해낸다는 것이다.

살레클의 '진짜 눈물의 공포'는 지젝이 속한 슬로베니아 학파를 소개하는 책으로 좀더 거시적인 시선에서 라캉주의자들의 최근 작업의 양상들을 모두 조감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신분석, 심리학 관련서들은 여전히 '이론'의 냄새를 많이 풍긴다. 그들의 작업이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찰과 상담에 기반해 있지만 그래도 어렵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의 미시주의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최근 번역된 펠릭스 가타리의 출사표적인 저작 '정신분석과 횡단성'(윤수종 옮김, 울력 刊)은 무의식을 신화적이고 가족적인 좌표로 보는 대신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장에 관계된 것으로 봄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세속화를 촉진시킨다.  '정치를 어떤 형태로 정신분석 이론 및 실천에 도입할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이론적인 접근이라면 좀더 읽기 쉽고 본격적인 분석서라 할 수 있는 '권력중독자'(데이비드 L. 와이너 지음, 임지원 옮김, 이마고 刊)를 읽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이 책은 권력중독자의 특징으로 과대망상적 신념, 극단적 애착, 가학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 등이 있다는 점을 사례를 통해 분석해보이며, 권력을 인간 본성의 차원으로 끌어들여 내밀한 논의를 펼친다.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이 펼쳐보이는 세계는 역시 인간의 내밀하고 어두운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들을 대하면 인간의 무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