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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비평_나초 두아토의 바흐예찬
무용비평_나초 두아토의 바흐예찬
  • 심정민 한예종
  • 승인 2004.05.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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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어떤 음악 소리를 보여줄 수 있는가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가진 나초 두아토의 스페인 국립 무용단이 ‘멀티플리시티’와 ‘침묵과 空의 형상’이라는 연작을 선보였다. 1990년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스페인국립무용단의 예술 감독으로 임명된 두아토는 이전에 전통 클래식만 고집하던 무용단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클래식의 바탕위에 현대성을 가미한 독창적인 무용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곧 스페인국립무용단을 세계적인 무용단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번의 연작은 1999년 독일 바이마르 시로부터 위촉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바흐 사후 2백 5십년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음악과 삶에 영감을 받아 창조된 무용이다.
우선, 두아토는 바흐의 고전음악을 다양한 움직임 표현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단행하고 있다.

현대적인 감각의 무용어휘 추구

무용수들의 육체는 때론 스스로 소리를 내는 악기이며, 때론 그 악기가 내는 음표 자체가 되어 다양한 음악적 색감을 표현한다. 바흐의 음악을 구성하는 미묘한 변주나 엇박자, 캐논 같은 음악적 조작들조차 그대로 안무로 변형된다. 이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음악을 보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며 무용수의 신체 움직임 자체가 음악으로 느껴지게 한다. 

다만 음악을 지나치게 세분화해 동작으로 가시화하고 있기에 작품 말미에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긴장감이 다소 퇴색한다. 모든 박자나 멜로디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마치 서구의 회화가 캔버스의 모든 공간을 드로잉과 색으로 빠짐없이 채워 넣듯이, 모든 음악에 동작을 채워 넣으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동양적인 예술미학에서의 ‘여백의 美’와 같이, 움직임 구성이 극대화돼가는 바로 그 시점에서의 ‘일련의 休止’는 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편 관객들의 호흡을 안무가가 주도할 수 있음을 두아토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두아토의 음악적 시각화는 다분히 서구적인 해석이라는 점을 말해둔다.

나초 두아토의 이번 작품들에서 드러난 또 다른 특질은 서로 다른 성향들의 혼재를 통한 다양성이다. 두아토는 바흐의 종교적이고 엄숙한 음악 속에서 인간 육체의 감각적인 美를 재창조해내고 있다. 이는 바흐 역을 맡은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의 육체를 마치 첼로와 같이 연주하거나 음표와 같이 지휘하는 유명한 장면에 가시화돼 있다.   

이와 더불어 두아토는 고전발레 테크닉을 근거로 해 현대적인 감각의 무용어휘를 추구한다. 잘 정제돼있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예컨대 몸의 곧고 우아한 자세 그리고 손끝이나 발끝의 유연한 놀림에서 볼 수 있듯이, 고전발레 테크닉을 오랫동안 훈련받았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테크닉에서는 금기시돼있는 팔다리의 굴신(flex)이나 턴-인(turn-in), 몸통의 자유로운 유영, 움직임에 있어서 性고정관념의 반전 등을 보여주는데 이는 현대무용에서나 허용되는 요소들이다. 이런 두 가지 무용유형의 혼재는 곧 바흐의 음악이라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동작구성을 가능케 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무대장치나 의상, 분장 역시 바로크 양식의 근본적인 개념을 토대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 됐다. 바로크 건축양식을 장식하는 ‘주름(fold)’은 철골 속의 원통들로 형상화돼 있으며, 바로크 시대의 속옷이었던 코르셋 역시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의상의 일부로 차용된다. 다만 이런 다양성에 대한 예술적 실험은 주로 ‘멀티플리시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침묵과 공의 형상’에서는 다소 희미해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음악을 시각화하는 다양성과 보편성

무엇보다 두아토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무용세계를 보편적인 예술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너무 널리 알려져 있어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바흐의 음악을 그대로 무용으로 형상화하는 두아토의 탁월한 안무적 재능은 그의 작품을 다분히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시킨다.

마찬가지로 스페인 국립 무용단의 단원들 중 절반가량이 스페인이 아닌 세계 각 나라 출신으로 다양한 무용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움직임에서 지역색을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이미 두아토가 표명하는 보편화된 예술어휘로 흡수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다분히 서구적인 감각으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서구예술의 미적 표현에 익숙해져 있는 동양권에서도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것이다.

이러한 두아토 춤의 보편성은 스페인 국립 무용단이 독일을 대표하는 바흐 기념회에 초청됐다는 점에서, 이후 유럽 전역과 뉴욕, 몬트리올, 시애틀을 거쳐 홍콩과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작품의 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입증되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현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모하며, 예술은 변화하는 세계의 취미를 대변해주는 인간의 고도화된 지적 표현이다. 하지만 동시에 예술은 시대를 초월하는 천재적인 독창성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나초 두아토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음악을 시각화하는 다양성과 보편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연작은 두아토의 예술세계가 잘 드러나는 진정한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는 것이며, 그의 예술적 정점이 아니라 앞으로의 진행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심정민 / 한예종 무용비평
필자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이화여대에서 ‘19세기 프랑스 무용비평이 20세기 초 미국무용비평에 미친 영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프랑스 왕립아카데미들이 17세기 예술계 흐름에 미친 영향', ‘근대 무용비평에 나타나는 관점과 특성에 관한 연구', ‘포스트모던 댄스의 예술적 특질에 관한 연구'등이 있고, 저서로는 ’서양 무용비평의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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