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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동물, 장소 이동과 ‘유전적 변이’가 살려낸다
멸종위기 동물, 장소 이동과 ‘유전적 변이’가 살려낸다
  • 김재호
  • 승인 2020.12.11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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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 과학동향

『사이언스』 표지 장식한 변이의 문제
장소 재배치와 이형접합성 관계 연구
상관성은 분명하지만 왜 그런지는 더 알아봐야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장소를 옮기는 게 가장 우선이다. 그래서 흔히 생각하기에 원래 살던 곳과 유사한 환경이나 유전적으로 비슷한 개체군이 있는 곳에 그 동물들을 데려 가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전적 다양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이형접합성(heterozygosity)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하비 사막 거북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거북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는데,
그중 중요한 요소가 바로 유전적 변이다. 사진 = 사이언스

최근 『사이언스』 표지에 실린 연구소식은 인위적 환경 변화로 인해 1백만 종의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동물이나 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재배치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다. 그런데 장기적 관점에서 재배치 후 생존하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현장에서 관찰된 재배치 후 생존율은 3.8%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결과에서 유전적 변이가 중요함은 유효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양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자들이 서로 더욱 상이할수록 이형접합성은 커진다. 근친교배와 이형접합의 수준은 생물의 생존과 적응에 직결된다. 그런데 그 수준과 장소 이동 간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모하비 사막 거북의 거주 이동 기간에 대한 장기간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높은 이형접합성(heterozygosity)을 지니고 장소 이동을 한 개체들의 생존률이 더 높았다. 즉, 서식 공간을 바꾸어 이형접합성을 높인 개체가 생존확률이 높았다. 연구대상은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막 거북이었다. 한마디로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고 자신에게 맞는 거주 환경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피터 스콧는 멸종 위기에 처한 사막 거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웨스트 텍사스A&M대

​​​​​​​20년간 166마리 게놈 데이터 분석 

사막 거북은 집에서 애완동물로 길러지다 유기된 경우가 많았다. 도심에서 살던 사막 거북들은 교외 라스베가스나 사막 등에 버려졌다. 웨스트 텍사스A&M대 생명과 지구, 환경학과 피터 스콧 교수팀은 166마리 모하비 사막 거북의 게놈(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했다. 20년 간 살아남거나 죽은 사막 거북 관련 데이터이다. 그 결과 지리적 단위나 장소 이동한 거리가 아니라 이형접합성이 생존에 중요했다. 생존한 사막 거북은 죽은 사막 거북보다 평균 23.09%나 더 큰 이형접합성을 지녔다. 

캘리포니아대(UCLA)에 올라온 자료를 보면, 1997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국은 9천105마리 이상의 모하비 사막 거북을 100 제곱 킬로미터의 대규모 장소로 이동시켰다. 그곳엔 이미 1천450마리의 사막 거북이 살고 있었다. 이주 장소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었느냐는 생존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 급격한 개체 감소가 진행돼 직선거리(특정지역) 조사에 의하면 2015년에는 대략 350마리가 살아남았다.  

피터 스콧 교수는 이형접합성과 생존과의 관계는 명확하지만 왜 그런지는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다만, 높은 이형접합성을 가진 개체는 게놈의 유연성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척박한 혹은 새로운, 심지어 스트레스 많이 있는 환경에서도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연구진들은 이번 연구결과로 더 많은 멸종 위기 동물들을 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UCLA 생태학과 진화생물학과 브래들리 섀퍼 교수는 “기후 변화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해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과 동물을 재배치하는 것이 점점 더 필요해진다”라며 “이러한 방식은 (멸종 위기 동물의) 생존율을 높이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낯선 장소 낯선 이들과 교류하라

연구진들은 이번 연구결과가 통제된 실험과는 다르기에, 얼마나 많은 유전적 변이의 증가가 얼만큼 생존율을 높이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형접합성 이외에도 지역 생태학, 개체의 질병 노출 이력과 현 상태 역시 중요하다. 

유전자 변이는 생존에 필수다. 해발 2,000~3,000m에 사는 티베트인들의 경우, 혈관이 빽빽해 산소 운반을 잘 한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높은 산에 살아가면서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 이젠 고산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잠복돼 있는 열성 유전자를 불러내 변이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는 일부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라리아에 저항성을 가진다. 말라리아 원충이 원형 적혈구 안에서 증식하기에, 적혈구가 초승달 모양으로 변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이주를 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유전적 변이가 용이하도록 하는 게 더 유리하다. 목숨을 건 장소 이동이라면 자신에게 친숙한 혹은 잘 맞을 것 같은 개체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아야 한다. 새로운, 심지어 잘 안 맞을 것 같은 부류들과도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살아남는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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