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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가속: 후기 근대 시간성 비판
소외와 가속: 후기 근대 시간성 비판
  • 교수신문
  • 승인 2020.12.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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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무트 로자 지음 | 김태희 옮김 | 앨피 | 156쪽

패스트푸드, 스피드 데이트, 짧은 낮잠, 드라이브 스루 장례식…. ‘시간 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우리의 모든 행위와 지향이 시간 규범과 규제, 기한 등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명령에 조율되고 순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윤리적 체제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는 근대적 주체가, 시간 체제에서는 더 엄정한 규제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탈정치화되어 있어 토의되거나 이론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한 키워드는 ‘사회적 가속’ 논리다. 사회 전체가 점점 속도를 더하고 있지 않은가? 이상할 정도로 쉽게 문제가 풀린다. 시간 구조는 우리 사회의 미시 차원과 거시 차원을 연결하고, 우리 삶의 구조와 질을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시간 구조가 비롯된 근대성 개념과 그 ‘가속’ 논리를 따라가면, 좋은 삶을 누릴 우리의 역량을 저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소외이다.

가속은 소외를 낳고, 소외는 호네트의 ‘인정 구조’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구조’를 왜곡시킨다. 남에게 인정받지 않고 남과 소통하지 않는 삶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삶이다. 소외가 필요하고 좋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소외는 우리를 좋은 삶에서 멀어지게 한다. 소외를 열쇠로 사회적 가속 문제를 풀면 이데올로기와 허위욕구 개념도 재해석하고 활성화할 수 있다. 사회적 가속 이론에 따른 좋은 삶이란 소외되지 않은 삶이다. 그러면 소외되지 않은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며,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이 책 말미에는 소외에서 벗어난 경험의 순간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 순간들은 우리 삶의 질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더불어 그 구체적인 방법도 어렴풋이.

저자는 이 책을 “근대적 삶에 대한 하나의 시론”이라고 소개한다. 과학적 또는 철학적 엄밀함을 따지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사회(철)학이 마땅히 물어야 할 질문으로 후기 근대사회로 일컬어지는 지금 우리의 사회적 삶에 재접속하고 싶다고 한다. 패러다임 내부의 수수께끼 풀기에 열중하는 사회학자·철학자·정치이론가들과 달리, 사회과학이라는 도구로 사람들의 삶에 공명하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고. 지금 사람들은 우리의 사적인 삶과 사회적 삶을 시급히 재구성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대부분 현재의 삶이 좋은 삶이 아니라고 느낀다는 말이다. 우리 삶을 은밀히 지배하는 시간 규범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분명, 우리 사회의 운명과 미래를 근심하는 이들에게 통찰과 도전을 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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