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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 경제쟁점 기록…'관찰'은 있지만 '성찰'은 없다
DJ정부 경제쟁점 기록…'관찰'은 있지만 '성찰'은 없다
  • 조원희 국민대
  • 승인 2004.05.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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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위기이후 한국자본주의』(전창환 외 지음, 풀빛 刊, 2004, 560쪽)

▲ © yes24
조원희 / 국민대·경제학

지난 몇 개월을 탄핵문제와 총선, 정치개혁으로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중차대한 현안이 경제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금융(과다한 소비자 신용과 기업금융위축문제, 신용불량자처리문제, 은행주식 매각과 관련된 경영권문제), 산업(재벌정책과 기술개발, 투자활성화 문제, 중국성장에 따른 산업재편문제, 구대우계열사 등 워크아웃 대상 기업 매각방식 문제) 등 화급한 대책을 요하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과연 이런 문제를 무난히 해결하면서 현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지방균형발전, 동북아허브구상 등 핵심 정책이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을까. 한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다른 영역의 문제를 악화시키지는 않을까. 일례로 과연 비정규직을 줄이면서 고용을 늘릴 방안은 있는가. 비정규직 보호를 하면 외국인 투자는 줄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데 과연 이 반론은 오류인가. 현재 중국시장의 성장에 따라 성장과 투자의 축이 정보통신산업을 중심으로 수도권 및 수도권과 가까운 서해안 쪽으로 이동중인데 과연 급히 투자를 촉진하려는 정부정책과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상충은 없는가. 지역 균형발전을 생각한다면 영남권에 밀집된 중화학공업, 이들 산업과 관련된 부품소재산업을 더욱 업그레이드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인데 이는 단기수익성을 위주로 하는 그 동안의 금융환경 아래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더구나 신흥산업은 중국과의 분업망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고용효과는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작금의 한국경제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은 과소투자, 구체적으로 설비투자위축 문제다. 외환위기 이전 1993∼97년 사이 국민총생산 대비 약 14%에 이르던 설비투자가 11%로 가라앉은 상태를 좀처럼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부족'한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에 관한 한 3% 또는 그 이상 부족한 상태로 지난 5년간 지내 왔다. 이 문제가 계속되는 한 모든 다른 경제적 목표는 성취 불가능할 것이다(이런 문제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 대안연대회의에서 3년 전 처음으로 제기했고 지금에야 겨우 제도권에서도 문제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이런 문제에 관해 이른바 시장주의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노동 유연성 제고, 개방 가속화, 기업의 투명성 증대, (주식)시장규율 강화, 은행의 대형화, 겸업화 등이다. 시장만능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태도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대안적 문제의식을 가진 학자들의 저작으로서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 동안 반시장주의적 관점에서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난맥상은 분명 김대중 정부의 이른바 빅뱅식 신자유주의 개혁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에 대한 기대는 이 가설을 보다 심도 있게 증명해 보이고 그 대안을 주문하는 것이 평자 뿐 아니라 유사한 관점을 가진 많은 연구자들의 기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모두는 아니라 해도 12명의 공동저자들에게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가설은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견해로부터 상당히 후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조영철은 "발전국가에서 민간주도 경제로의 이행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이었지만 이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도기적 불안정과 제도 간 부정합 등을 고려한 구체적인 이행전략은 취약했다"라고 말한다. 금융에 관한 홍영기의 글도 같은 취지로 전개되고 있다. 김진방의 글은 이보다 냉정한 '관찰자적 태도'를 취하면서 주식시장이 외국투자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일절 분석을 '거절'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대안적 시각에서는 반드시 금융-산업-노동정책이 유기적으로 고찰돼야 대안적 시스템에 대한 전망도 성과로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런 관점에선 이 책에서 본격적인 분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날 누구도 시장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과 극단적인 시장만능주의는 엄연히 다른 것이며 대안적 시각이란 바로 후자와 예리한 대립각을 세울 때 의미 있는 명제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저자들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모호함을 넘어 '모호화'를 의도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즉 이런 식이다. "자유시장의 이론적 효율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배제와 탈락의 원리가 작동하는 냉혹한 시장경쟁이 전제돼야 한다. 이러한 시장경쟁은 인간 삶의 다양한 질적 측면을 일차원적으로 획일화하고 왜소화시킬 뿐만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를 필연적으로 결과한다. 따라서 세계화의 조건 아래에서 시장을 무시한 선택이 있을 수 없음을 냉정하게 승인하면서도 시장 경쟁의 냉혹하고 비정한 특성이 다소간 순화된 시장을 희망한다."

이 책은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차분한 기록(documentation)으로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연구서임은 틀림없다. 필자의 다소 냉혹한 비판은 저자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평자를 포함해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모든 연구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필자는 영국 버크벡대에서 'Value-theoretic Approach to the Dynamics of Competition, Monopoly-capital and the State'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사유재산, 시장제도와 외부화', '디지털네트워크경제의 가격형성과 축적동학'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경제의 위기와 개혁과제', '가치이론 논쟁 -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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