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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우리시대 학술서 서평의 유형과 문제점
진단 : 우리시대 학술서 서평의 유형과 문제점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5.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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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만 울리는 '리뷰'들...성실한 책읽기와 개성적 서술로 승부해야

강영계 건국대 교수(철학)는 월간잡지를 위시해 주간잡지와 일간신문에 짤막한 서평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대략 1980년대 초엽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국내 서평문화는 이제 막 20년의 역사를 턱걸이 한 셈이다. 물론 그 20년 동안 서평의 외형은 많이 발전해왔다. 현재 주요 일간지에서는 주말북섹션을 발행하고 있으며, 서평지를 표방하는 '도서신문', '출판저널', '서평문화', '북앤이슈', '북텍스트' 등의 잡지가 존재해왔고, 학술지나 계간지에서도 서평항목을 따로 둬 매체의 각 분야에 서평이 그물망처럼 퍼져있다.

그러나 서평공간은 확산됐지만 제대로 된 서평의 역능을 발견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어떤 한 책에 대한 일간지의 리뷰를 모두 모아 하나로 연결시키면 출판사에서 작성한 책소개 보도자료가 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서평이 많다. 전문지들의 서평 또한 인구에 회자하는 名文이 없는 걸 보면 본격성과 전문성이 아직 많이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선 서평이 일종의 출사표다. 마르크스, 메링, 플레하노프, 벤야민, 블로흐, 루카치 등도 저널리즘적 작업을 통해서 그들의 이론을 정립했고 거기엔 서평의 역할이 컸다. 하나의 예가 1981년 미국의 서평지 '다이어크리틱스'에서 벌어진 스탠리 피쉬와 볼프강 이저의 독서이론 논쟁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씨는 서평을 "엄밀한 학술서평, 소개하는 리포트서평, 주관적 감상이 주가 된 독후감서평으로 삼분"하면서 좋은 서평은 이 세 요소를 고루 갖춘 글이라고 본다. 그는 실패한 서평의 대부분이 "수신자와 매체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 글쓰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서평이 맥락 의존적, 상황 의존적인 글쓰기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필자들이 '서평'이라는 글쓰기가 요구하는 사유의 방식, 그런 사유를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서평은 비평이면서 동시에 책에 대한 소개다. 그러나 오늘날 저널리즘 서평은 '평'이 약하고, 학술지 서평은 매체의 성격상 '가이드'가 약하다. 그런 점에서 교수신문처럼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매체에 실린 서평은 평과 가이드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균형잡힌 서평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우리시대 학자들의 서평이 대개 어떤 양상들을 보이고 또 문제점은 무엇인지 잘 살펴볼 수 있다.

무미건조한 내용요약 사라져야

신문서평은 2백자 원고지로 따져서 길어야 20매이고 짧으면 7매 정도다. 이 짧은 공간 때문에 서평자는 호흡이 긴 글에서와는 달리 말의 경제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 글의 구조에 대한 명확한 설계도가 서있지 않으면 좋은 글을 써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많은 서평들이 이 첫 번째 관문에서 무너지고 만다.

서평의 좋지 않은 사례들은 유형별로 몇가지 제시하면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닮은꼴' 유형이 있다. 책의 구성을 따라서 서평도 "1장은 어떻고 2장은 어떻고" 라며 설명하다가 끝에 가서 아쉽다거나 훌륭하다는 코멘트를 붙이는 글들이다. 소설에 대한 서평일 경우 플롯과 줄거리를 따라가는 이야기전개형을 말한다. 이 때 서평자의 역할은 책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주는 데에 그치며, 책 내용과 연관이 없는 비전공자들은 지루해하기 십상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를 가리켜 '거팅'(gutting, 무비판적으로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자기 생각에 갇혀 책 왜곡하는 경우도

다음은 '장단점 열거형' 서평이 있다. 서평이 좋음과 나쁨을 가려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런 유형은 교과서적 서평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글은 크게 두 파로 갈리는데 책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글이 있는 반면, 왜 장점이고 왜 단점인지가 잘 이해가지 않을 때도 많다. 후자일 경우 이런 유의 서평은 최악이 된다.

'인용형' 서평도 거론할 수 있다.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좋은 서평은 평자의 말은 간단히 하고, 책의 훌륭한 본문을 직접 인용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학자들의 서평에서 인용이 등장하는 경우는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로서, 비판의 전거일 때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글의 문맥을 해치는 불필요한 인용이다. 혹은 분량을 채우기 위해 동원된 인용이다. 전자는 자제해야 하고 후자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이상 거론된 서평들은 '평면적 글쓰기'의 예들이다. 단순명료한 장점은 있지만 통찰력 있는 내용이 뒷받침돼주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잘 된 서평은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깊이는 책에 대한 밀도있는 서술에서 생기고, 넓이는 책과 관련된 지식에서 생겨난다. '배경설명형' 서평은 학술서 서평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의 핵심 주장이 학설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 것인지 등을 서두에 풀어내면서 서평에 본격진입하는 유형이다. 이런 글은 필자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준다. 그런데 '배경'이 '본론'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거나 압도하는 '본말전도형' 서평이 돼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다. 변죽만 울리다가 종 한번 치고 끝나는 이런 글들은 독자들을 매우 허탈하게 만든다.

'표적공략형' 서평도 신문이라는 지면제약 때문에 종종 활용되는 방식이다. 핵심만 잘 이해하고, 요리하면 이 책은 해결된다는 마음에서 출발하겠지만 책의 전경과 후경, 부분과 전체를 잘 조감해야하는 서평에서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때때로 핵심이 전혀 핵심답지 못하거나, 지엽적일 경우 난감하다. 필자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거나, 혹은 자신만의 관심사에 따라 책을 읽고 서평을 쓸 경우 이런 '왜곡'에 직면하게 된다.

'개념 붙들고 늘어지기'는 일종의 형식주의

비판이 강조되는 '논쟁서평'은 일종의 시비걸기다. 씨름의 비유를 들자면 '들배지기형'은 책을 내내 메고 다니며 흔들다가 막판에 땅에 메어꽂는 방식이고, '되치기형'은 "훌륭하다, 의미가 깊다, 노고를 치하한다" 등의 수식어로 칭찬하다가, '그러나'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꾼 뒤 창을 깊숙이 찌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들은 다 좋다. 그런데 잽과 훅을 여러 가지로 사용해야지, 계속 잽만 날리다가 끝나는 비평들도 종종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개념 붙들고 늘어지기'다. 엄밀하게 볼 때 개념의 올바른 사용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책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뒤로하고 개념만 가지고 가타부타하는 것은 일종의 형식주의일 뿐 아니라 서평자의 성실성마저 의심케 한다.

한 책이 거둔 성과를 밀도깊게 정리하려고 애쓰는 '농밀형' 서평도 많다. 짧은 지면 안에 책 내용 요약하고, 저자의 의도 설명하고, 평가하고, 감상도 덧붙이는 등 말의 경제성과 글의 구조를 잘 활용한 서평이다. 이런 서평은 대체로 책을 꼼꼼히 읽고 음미한 필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책의 내용을 주체적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내내 책에 끌려 다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경우 서평은 짜임새 없이 뒤죽박죽 되며 혼란스럽다.

전문가 서평이 어려운 이유는 '용어' 때문일 때가 많다. '업계용어'가 5할 이상을 차지하는 글쓰기, 학계 동료와 토론하던 문맥을 여과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서평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전문가 영역에서 쟁점이 되는 것이 곧 보편적인 이슈라는 '자만심'이 가득 묻어나는 서평을 대할 때면 '전공변호인'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이런 유형은 대부분 '감탄사'가 많이 사용되며 꼭 읽어야한다는 '강제성 추천'도 예의 따라붙게 돼 있다.

좋은 서평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을 잘 활용한다. 필자의 주관이 글의 문맥에 잘 녹아 있으면 글이 살아난다. 책의 요소요소에 대해 간단간단히 평가를 해나가다가 종합적인 비평에 이르는 서평, 필자의 개인적인 체험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예시로서 잘 활용된 글쓰기, 책을 읽으면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으로 책과 필자의 내면을 종횡무진 오가는 서평은 개성적이고 읽는 맛이 뛰어나다.

특히 학술서일 경우 저자에게 내밀하게 말을 거는 듯한 방식의 글쓰기는 학술서의 딱딱함을 얼마나 많이 용해시키는지 모른다. 물론 이 때의 주관성은 책에서 비롯된 주관성일 때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고 필자의 주장을 위해 책을 희생시키는 '주객전도형' 서평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 주객전도형은 서평을 쓰는 자신이 얼마나 책을 잘 꿰고 있는지, 그와 관련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려는 '노출욕구'에 가득 차 있다.

물론 노출욕구 말고도 주객전도를 유발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서평을 통해 이데올로기 대결을 펼치는 경우다. 특히 책과 대립적 학설이나 방법론을 사용하는 필자가 비평가로 나설 경우 칼을 가는 소리와 사소한 잘못도 용서않으려는 이가는 소리가 낭자하게 울려퍼진다. 그렇다고 그 논쟁이 생산적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감정의 골만 깊어질 때가 많다.

이렇게 볼 때 좋은 서평의 첫 번째 덕목은 책을 정확하게 읽기, 텍스트와 거리를 유지하며 비판적으로 읽기, 서평을 위한 주관적 도구(감상, 경험, 평가)를 잘 활용해 글을 '개성의 건물'로 세우는 것 등으로 보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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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엄 2004-05-06 15:39:29
강기자님,
서평에 대한 글...종합적으로 정말 공감이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