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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권여현 展
미술비평: 권여현 展
  • 심상용 동국대
  • 승인 200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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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부정하는 무모함

‘권여현-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展의 서문은 차용, 해석, 도전 같은 굵직한 개념들로 빼곡히 차있다. 이를테면, ‘잘 알려진 이미지의 차용’, ‘새로운 해석’, ‘예술생산의 진정성에 대한 심난한 도전’, ‘미술사라는 틀에 갇힌 죽은 이미지를 현실에 재생시키기’ 등인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과거사와 전통에 대한 일련의 입장표명들이다. 우리 세대처럼 서구의 근대주의적 전위(avant-garde)를 예술의 전범으로 학습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한가지 주제넘은 습관을 지니고 있다. 소위 ‘작품’ 앞에만 서면, 이전에 비해 뭔가 새롭다거나 다르다거나를 주워담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 역시 과거사와 전통에 대해 학습되고 고착된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권여현의 작품들에선 그것이 작가 일개인의 행위결과가 아니라는 점, 즉 교수가 그의 제자들과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이 새로운 점으로 부각되는 듯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권여현이 화가에게 부여된 특권적 아우라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조롱했으며, 더 나아가 전통적인 ‘회화의 가치’를 가차없이 전복시켰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전에 타자를 개입시켰다는 자체가 이미 일거에 예술의 지평, 질서, 구조를 혼란에 빠뜨린 아나키스트적 도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여현은 여전히 ‘경쾌한 도발’과 ‘부르주아 관객모독’이라는 반미학적 넌센스를 추구하는 전위주의자임에 틀림이 없겠다.

권여현의 세계가 여전히 아방가르드의 연계선상에서 ‘작가의 신화’를 부숴가고 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진술이다. 사실 신화적 작가의 해체는 미술사에서 전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이미 1950~6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 작가들은 ‘최전방의 모험자’나 고도로 ‘자율적인 생산자‘라는 애매한 역할을 스스로 접기 시작했고, 대신 잇속을 챙기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노골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작가 신화도 신화적 작가도 이미 없다. 따라서 더 이상 부술 것도 부서질 것도 없다. 저자는 이미 너무 많이, 그리고 단기간 내에 집중적으로 죽었다.

그러므로 이미 거의 종결된 사건과 진배없게 됐지만, 한번 더 반추해보자. 왜 그토록 허물고 부수고 죽여야 했을까. 물론 그간 봇물처럼 쏟아졌던 탈신화적 담론들이 전적으로 허황된 것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다수의 영웅으로서의 작가들은 달큰한 픽션, 장식과 과장의 결과였다. 그들이 한시도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지적 또한 부인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다. 정작 상상력과 색과 좋은 구성을 위해 전문가를 고용했던 것은 거의 언제나 권력이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反-작가나 ‘탈-작가’가 동시대의 화두가 됐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무엇이랴.

하지만 부수고 해체하기 전에 다시 한번 목표를 확인해야만 하지 않을까. 작가가 권력의 하수인이었다면, 그를 고용한 주인에 주목하는 게 더 본질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를 필요로 하며, 결과적으로 그 신화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온 당사자 말이다.

그러므로 E.H. 카의 교훈을 따라 ‘해체가 아니라 해체하는 자’를 볼 일이다. 신화의 담론만큼 탈신화의 담론들 뒤에도 감시의 망루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드는 사람들만큼이나 부수는 사람들도 수당을 받으면서 그렇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베레모를 쓰고, 곰방대를 문 화가만 하수인인 것은 아니다. 베레모를 벗기고, 곰방대를 부수는 전위 역시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권여현과 그의 제자들은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며 모아 놓은 ‘걸작들’을 가차없이 해체하고 재조합한다. 루브르의 유산들, 팡떼옹의 경건한 전통들에 일상을 주사하고 세속화한다. 이 유쾌한 전복자들은 부담없이 전통을 짓밟고, 이물질과 뒤섞고, 대체하고, 변조한다. 서로 역할을 바꾸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 안에서 마음껏 즐긴다. 결과는? 의미의 파산이다. 이를테면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베트맨, 캣우먼이 존중해야 할 어떤 의미론적 차이도 없이, 단지 유희라는 하나의 모듈에 의해 동일한 것으로 다뤄진다. 1808년 스페인 대학살의 희생자와 단오를 즐기는 조선조의 여인도 하등 다를 바 없다. 원전의 의미는 재해석이나 우스꽝스러운 패러디, 과거/현재, 원작/패러디, 작가/타자의 현기증나는 하이브리드를 남기고 소멸된다. 지나치게 경쾌해 보여서 그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그것은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었던 마르셀 뒤샹의 연장선상, 곧 ‘다다’요 ‘反미학’의 승계임이 분명하다. 이 일련의 연계 밑엔 하나의 태도, 과거사와 전통에 대한 부정의 입장이 흐르고 있다.

과연 서구의 근대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과거에 대한 염증, 반동 적개심의 응어리로부터 동기지워졌다. 자신이 과거의 권위에 의해 억압당해 왔으며, 따라서 더 이상 조상, 부모, 스승들로부터 배우지 않겠다는 자각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과학적 진보사상, 불확정성의 이론과 해석학 따위가 덮치면서 어떤 전통(적 지식)도 무지가 낳은 주제넘은 짓거리로 규정해버림으로써, 과거를 향해 남아있던 마지막 존경심마저 거둬버렸다. 중요한 건 권여현과 그 제자들도 이처럼 ‘한심스런 과거’에 대한 일체의 존경심을 후퇴시키는 것을 무엇보다 지식의 급선무로 삼는 입장을 부지불식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억압적 기제들의 총체로 보고, 따라서 그것들을 대상화하고 탈권위화 하는 것만이 유일한 미적 가능성이라는, 모더니즘, 다다, 전위, 반미학의 서구 근대주의의가 걸어왔던 불만으로 충혈된 적대적 인식틀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즐기고, 소비하는, 오늘날 문화의 골목들 도처에서 목격되는 소위 ‘시대정신’에 자신을 맡기게 된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전면적인 반동’과 ‘새로운 과업에 대한 신봉’이야말로 결함이 없는 지식이라는 정복자이자 ‘神-人’인 서구 모던인들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환상은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가열차게 복제되고 증식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 삶이란 것들, 예컨대 현재와의 졸속한 화해나 미래의 경박한 환상 같은 각양각색의 포스트적 변종들도 이 위험스런 과거와 결코 무관치 않다.

나는 권여현과 그의 제자들의 유쾌해 보이는 이미지들 앞에서 오히려 과거를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음미하는 방식, 너무 정복적이거나 파산적이지 않은 재해석, 시간의 유산들을 너무 무릎꿇리지 않는 방식들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모든 것을 현재화하고, 자신의 작용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 그리고 그 저변인 서구 모더니즘의 과잉자각과 넘치는 감각주의 앞에서 오히려 일련의 스토아적 전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명상록’ 제 2장에서 전하는 지혜를 떠올리게 된다: “(과거의)그들이 모르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는 이유로 형제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야 하며, 보잘 것 없는 사물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심상용 / 동덕여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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