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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물관을 나온 고미술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물관을 나온 고미술
  • 교수신문
  • 승인 2020.11.1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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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새로운 전시를 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보여주려는 주제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고 유물을 배치한다. 또 강조하려는 전시 방향에 따른 특별한 전시 요소들을 전시에 구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몇몇 곳은 신선한 관점으로 전시를 해석하고 구현해 큰 주목을 받는다. 
서울의 신용산역 바로 앞에 하얀색 정육면체 건물이 우뚝 서있다. 백자 달항아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모레퍼시픽 그룹 신본사다. 이 건물 지하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이며 전시실은 모두 6개로 이루어졌다. 미술관이라는 이름처럼 일반적인 박물관과 다른 점이 있다. 거의 모든 박물관은 항상 유물이 전시되는 상설전시실과 특별전 때만 문을 여는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상설전시실이 없다. 다른 박물관의 눈으로 본다면 늘 특별전만 여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전시가 상당히 독특하다는 점이다.
고미술에 한정해 말하자면, 주목되는 전시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2020. 7. 28∼12. 27)이다. 이 전시는 고미술 소장품만 전시한 특별전으로 이 전시에서는 유물의 종류에 따라 전시실을 나누었다. 크게 회화, 도자기와 토기, 금속공예와 섬유공예, 목가구와 목공예 등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이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유물의 종류에 맞는 전시 기법을 모색하였고 더불어 전시실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처럼 만들었다. 때문에 관람객은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신선한 풍경에 놀란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 전경 ⓒ박찬희

전시실별로 살펴보자. 전시실 입구 로비의 긴 벽에 유물이 걸렸다. 쪽물로 염색한 닥종이에 은으로 불경을 쓴 고려 시대의 사경이다. 보통 사경을 전시할 때는 진열장 바닥에 일부분만 펼쳐 전시한다. 벽에 사경을 모두 펼쳐 긴 액자에 넣듯 전시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관람객이 허리를 숙여 사경을 보지 않고 선 채로 바라보는 방식은 뜻밖에 신선하다. 유물을 ‘놓다’에서 ‘걸다’로 바뀌었다. 이 사경 전시는 앞으로 펼쳐질 전시가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한다.

 

병풍이 있는 전시실 ⓒ박찬희

첫 번째 전시실에는 회화가 전시되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큰 거리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이곳에는 주로 병풍이 전시되었다. 전시실은 크게 3개의 길로 구성되었는데, 길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 처음 만나는 넓고 큰길은 어느새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이어지고 막지막에는 중간 규모의 길로 바뀐다. 길을 구성하는 핵심은 진열장의 다양한 변주다. 진열장을 이리저리 꺾고 붙이고 떼어 역동적인 길을 만들었다. 한편 병풍은 대부분의 전시에서는 활짝 펼치지 않은 상태로 전시한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전시 방법을 바꾸어 평평하게 펼쳤고 관람객이 코앞에서 병풍을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때 병풍은 한 폭의 거대한 그림처럼 인식된다. 발상을 바꾼 전시 기법들이 모여 관람객은 병풍으로 만든 변화무쌍한 벽화 거리를 걷는 기분이다. 
다음 전시실로 넘어가는 통로에 검은 커튼이 쳐졌다. 커튼은 관람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발걸음을 이끄는 효과적인 장치다. 커튼을 여는 순간 낯선 풍경을 대면한다. 수많은 도자기가 넓은 진열대에 흩뿌려지듯 펼쳐졌고 철망이 진열대를 둘러쌌다. 특히 철망과 유물의 조합은 상상 밖이다. 이 전시실은 그 자체가 설치미술 작품이 되었다. 미술관측에서는 도자기와 토기의 개성보다 이 유물들이 모여 만든 집합적 풍경을 더욱 강조하였다. 만약 개별 유물을 부각시키거나 역사적 흐름을 강조했다면 박물관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전시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유물이 있는 전시장 ⓒ박찬희

진열대 앞으로 가는 방법도 독특하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듯 철망에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때 비로소 철망에 가려지지 않은 유물들을 대면한다. 많은 유물들이 넓은 진열대에 늘어섰고 따로 유리벽과 같은 보호 장치를 두르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이런 전시 기법을 이용한 사례는 있지만 전면적으로 사용해 큰 전시실 하나를 가득 채운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전시실은 고미술이 현대미술로 전환되는 현장이다.

 

금속공예품과 섬유공예품이 있는 전시장 ⓒ박찬희

작은 3, 4전시실을 지나면 5전시실에 이른다. 이 전시실에는 금속공예품과 섬유공예품이 전시되었다. 이곳은 장엄하다. 사각 기둥 같은 단독 진열장들이 마치 신전을 받드는 기둥처럼 전시실 중앙에 늘어섰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30개의 진열장은 전시된 유물이 무엇인지를 떠나 그 자체로 관람객들에게 엄숙함을 불러일으킨다. 진열장은 유물이 있는 부분만 밝고 나머지는 어두워 이 느낌이 더욱 강조된다. 그런데 가까이 가면 느낌이 다시 달라진다. 유물을 보기 위해 진열장 사이로 들어서면 마치 베일에 싸인 비밀의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반면 벽에는 액자 형식의 진열장이 배치되었다. 평평한 진열대에 유물을 펼쳐놓는 형식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전시했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한눈에 볼 수 있어서 편하다. 이렇게 전시하려면 유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 점 한 점 잘 고정시켜야 한다. 수량이 적다면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으로 작업해야한다. 이러한 진열장이 넓은 전시실 네 벽을 가득 채웠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벽면 진열장을 보면 진열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온다.

 

목가구와 목공예품 전시장 ⓒ박찬희

도자기와 토기 전시실처럼 독특한 공간이 목가구와 목공예품 전시실이다. 금속공예품 전시실에서 검은 커튼을 열고 맞닥뜨리는 이 전시실이 놀랍다. 전시실 중앙에는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었다. 문제는 좌우의 벽이다. 왼쪽에는 덩치 큰 목가구들이 늘어섰고 오른쪽에는 소반과 떡살 같은 작은 목공예품이 전시되었다. 목가구는 책장에 책을 넣듯 틀을 만들어 그 안에 놓거나 올려놓았다. 반면 소반은 윗면이 보이도록, 떡살은 문양이 보이도록 벽면에 전시해 드론으로 윗부분을 보는 듯하다. 
목가구와 목공예품 전시는 유물의 무엇을 중시하는가에 따라 전시가 상당히 달라진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만약 목가구와 목공예품의 개별적인 특성, 역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한 점 한 점을 나란히 전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술관측의 전시 초점은 달랐다. 목가구는 틀에 넣어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도록 했다. 소반과 떡살 같은 목공예품은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해 벽면에 설치미술 작품처럼 전시하였다. 그리고 한 점이 아니라 여러 점을 모아 그 자체가 또 다른 작품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빛의 강약이다. 1전시실부터 마지막 전시실까지 어둠과 밝음이 교차된다. 일반적으로 전시실의 밝기는 일정하게 맞추며 설사 달라지더라도 그 차이가 크지 않다. 이 전시는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빛의 밝기에 급격한 변화를 주어 관람객들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전시실을 이동한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가는 곳에는 커튼을 쳐 극적 효과를 높였다. 어두운 전시실은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 반면 밝은 전시실은 한눈에 보이도록 시원하게 구성하였다. 전시는 전체적으로 유물의 역사적인 맥락보다 작품의 조형적 특성과 유물들이 어우러진 전시실의 분위기에 주목하였다.
고미술을 보는 관점에 따라 전시 방법이 달라진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전시 방식은 보는 입장에 따라 평가가 사뭇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고미술 전시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전시의 영역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유물로 공간을 채우는 것인가, 유물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인가라는 뜻밖의 질문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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