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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은 어루만졌으나, 精神은 드러났는가
뼈와 살은 어루만졌으나, 精神은 드러났는가
  • 김봉건 부산여대
  • 승인 2004.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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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董仲舒 : 중화주의의 개막』(신정근 지음, 태학사 刊, 2004)

▲ © yes24
김봉건 / 부산여대 동양철학

정말 오랜만에 나온 동중서 연구서다. 우리 동양철학계에서 漢唐代의 철학 연구서가 근래에 와서야 겨우 기지개를 켜듯 간간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유가철학의 대표격인 동중서에 관한 철학서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야 겨우 동중서 철학의 전반에 관한 개설서가 나오게 된 점에 만시지탄이 있으나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동양철학 연구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주지의 일이지만 그것은 조선조부터 내려온 주자학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에서 비롯한 유폐 때문일 것이다.

주자학에 가려온 한당대 철학 복원해

주자는 선진유가의 도는 맹자가 죽고 나서는 그 도통이 끊어져서 천년 이상 지난 뒤에 북송의 주돈이에 와서야 이어졌다고 말했다. 조선조 유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兩漢 시기와 남북조 시기, 수당 시기에는 문화정신이 도가나 불교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혹 유가가 있더라도 醇儒가 아닌 훈고학자나 잡가적 성향을 띤 유자들이 간간이 명맥을 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자학의 理學이 백성들의 정신적 지도에 유용하며 내성외왕의 실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관학이 되었고 나아가 한 시대의 패러다임(顯敎)이 됐다. 이러한 사정은 해방 후에까지 그 영향이 이어와 동양철학 하면 언필칭 공?맹이요 아니면 정?주여서 양명학조차도 그다지 발을 디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한당시기의 학술에 관한 논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동중서 사상의 연구는 쉽지 않다. 우선 ‘춘추공양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숨쉴 틈 없이 바쁘게 변화하던 전국 말과 진의 중국 통일의 景相, 한이 건국하고 무제에 이르기까지의 적어도 60년가량의 정치 상황을 세밀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시 통일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 여러 학술 사상들이 뒤엉켜 대립하던 역동적인 분위기를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여러 요소들에 대한 공부가 잘 무르익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더욱이 유려한 의역과 군데군데 서양철학의 개념들과도 유비적으로 서술해 이해를 높이려고 한 점, 오늘날 우리의 현재적 상황과 대비해 적절한 비판까지 곁들이고 있는 점을 보면 저자의 이 방면에 관한 온축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중서의 생애 역동적으로 그려

특히 인상 깊게 느꼈던 몇 가지 점을 밝히면 첫째, 동중서의 생애를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사실 동중서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적다. 글자 수가 많지도 않은 ‘사기’의 ‘유림전’이나 ‘한서’의 ‘동중서전’을 근간으로 몇몇 보충 자료들을 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더듬는 격이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기 매우 힘들다. 저자는 자료의 행간을 더듬고 동시대의 유관한 인물들과의 연대기를 대조하면서 상상력과 유추 능력까지 발휘해 마치 ‘소설 동중서’를 쓰듯이 살아 숨쉬는 동중서의 초상화를 그려냈으니 이 점이 이 책의 큰 공이다.

둘째, 고전의 이름을 우리말로 풀어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기’를 ‘역사가의 기록’으로, ‘한서’를 ‘한왕조의 통사’로 쓰는 등이다. 그리고 ‘춘추번로’의 편명들도 하나 같이 한문 그대로 쓰지 않고 모두 우리말로 고쳐 쓰고 있다. 예컨대, ‘立元神’을 ‘국가 기강의 수립’으로, ‘天地陰陽’을 ‘하늘과 땅 그리고 음양’ 등으로 쓰는 것이다. 다소의 무리를 무릅쓰고라도 아름다운 우리말로 새 생명을 불어넣은 저자의 능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기왕 우리말로 쓰는 김에 ‘인’이나 ‘가능태’와 같은 단어는 더 친근감 있는 우리말로 풀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은 있다. 특히 유가의 ‘인’은 주자도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이치’(心之德, 愛之理)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랑으로 바로 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태’도 서양철학의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 같아서 거슬리는 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의 곳곳에서 동양철학의 독특한 개념들을 서양철학의 개념들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여과없이 그대로 혼용하고 있는 점은 매우 경계해야 할 일로 사료된다. 남북조 시기의 ‘格義佛敎’나 근대화 시기의 ‘中體西用’ 등이 얼마나 호도된 내용이었던가 하는 것을 반성해 본다면 이 점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중화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

셋째, 저자가 이 책의 곳곳에서 의도적으로 동중서 사상을 중화주의를 개막하는 일과 연결지으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中華主義’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책의 내용으로 보면 유가의 사상을 주체로 한 문치의 정치사상을 말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변방의 四夷와 구분짓는 중국 민족성의 자각이라는 말 같기도 하고, 또 그 두 개념이 한데 모인 개념 같기도 한데 대단히 모호하다. 만약 그런 개념이라면 왜 하필이면 동중서가 개막자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런 일이라면 아마 주공이 더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그리고 저자는 책의 매 장절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꼭 동중서의 사상을 중화주의와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러려고 하는지가 궁금하다.

넷째, 동중서 사상을 8개 정도의 장르로 나눠 각각의 부분을 낱낱이 해부해 본질을 밝히려 했다. 그런데 이건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이고 더욱이 악의적인 해석이 될지 모르지만 이 말만은 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힘들다. 즉, 저자는 이 책에서 동중서 사상의 살과 뼈와 피 등의 본질은 충실히 살폈으나 정작 정신과 생명을 밝히는 데에는 아직 흡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동중서는 ‘예기’의 ‘월령’ 등의 환경 생태론이나, 추연 등의 음양오행론에 입각한 ‘氣化宇宙論’, 묵가의 유신론적 천관 등에 감염돼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災異說’과 ‘君權天授說’을 주창하기도 했다. 또 ‘춘추공양전’의 ‘張三世’, ‘異內外’, ‘存三統’의 설 등을 채용해 한조의 정체성을 세우는 어용학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러나 이런 동중서 사상의 조각들은 모두 ‘군심을 바로잡음’(格君心之意)에 겨냥된 유가의 민본정신에서 나온 방편들이었다. 한조의 군주가 지닌 공전의 절대권력은 현실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며, 또 이를 순전히 군주 개인의 도덕성에만 호소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물건이었다. 군권천수설에 의하면 군권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 지고무상의 것이지만 군주가 좋아라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군권은 곧바로 천권 아래에 종속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전통적 천명사상에 입각해 천심은 곧 민의에서 나오는 유가의 사상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면 동중서가 얼마나 교묘하게 민본사상을 구현하고 있는가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동중서가 ‘天人三策’이나 ‘춘추번로’에서 피력한 ‘天人感應’의 설은 이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면 정신과 생명을 고스란히 잃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저자가 책에서 하버마스의 말을 인용해 “나중에 태어난 자의 특권으로 앞시대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평자로서 대단히 켕기는 바가 크다. 바둑에서처럼 실제 실력은 급수도 안 되면서 훈수의 자리에서는 유단자 행세를 한 건 아닌지 저어된다.

필자는 동아대에서 ‘동중서 천인감응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논문으로 ‘동방문화적 ‘和’ 정신’, ‘주자와 퇴계의 인설’, ‘易 卦辭의 元亨利貞 思想’, ‘맹자와 중용의 인성론 비교 연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유학-전통과 현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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