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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_탈근대 무용의 창시자, 커닝햄 내한공연
예술계풍경_탈근대 무용의 창시자, 커닝햄 내한공연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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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연속에서 건져올린 의미…관객의 해석만 존재한다

84세 고령의 몸을 이끌고 머스 커닝햄이 내한했다. 탈근대 무용을 선두지휘한 그는 20세기 후반 무용계의 변화를 주도해왔지만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연성'으로 집약되는 그의 무용 세계를 들여다 본다.

지난 1984년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와 함께 한국을 찾았던 포스트모던 무용의 거장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이 다시 한국을 찾는다. 84세의 고령에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불편한 몸이지만, 무대 위에서만은 끊임없이 예술혼을 뿜어내는 그의 이번 공연은 아마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 몽환적인 음악을 선보여 왔던 록그룹 라디오헤드와 영국의 시규어 로스가 함께 작업하게 돼 더욱 주목을 끈다. 이번 공연에서는 ‘머스 커닝햄 댄스 컴퍼니’의 최신작 ‘스플릿 사이즈(Splite Sides)'와 1992년 존 케이지에게 헌정한 작품, 그리고 신비롭고 시적인 이미지가 담긴 ‘포인트 웨이(Point Way)'를 선보일 예정이다.

반세기나 무용단을 이끌며 파격적인 동작을 보여줬던 머스 커닝햄은 누구인가. 이사도라 던컨이 현대무용의 선구자 격이라면, 커닝햄은 3세대쯤에 속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아방가르드 안무가로서 혁신적인 인물이었다. 전통발레는 장대한 제스추어와 아름다운 육체, 정열과의 한판 승부다. 여성무용가는 발끝서기에 균형을 둠으로써 비유를 심화시켜 관객들을 끊임없이 고양시켰으며, 남녀 주인공들은 욕망의 대상이었다. 누구보다 현대무용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마사 그라함(Martha Graham) 역시 이런 낭만주의적인 표현들에 집중했다. 관객들은 바로 거기서, 즉 일상과는 다른 예술의 경지를 느꼈고 감동을 받았다.

각본 없는 즉석 춤의 세계 선보여

하지만 커닝햄의 출발은 그라함과의 결별에서 시작된다. 너무나 문학적이고 감성적으로 흐르는 그라함 무용단에 불만을 느낀 커닝햄은 여기서 탈퇴해 새로운 무용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는 ‘순수한 움직임’ 자체에서만 무용의 의미를 찾는 형식미학에 집중했다. 즉 동작행위에 대한 절대적인 집념으로, 사상적 기반은 동양의 선불교사상이다. 여기서 확립된 그의 무용철학의 핵심은 ‘우연성’과 ‘동일성’이다. 커닝햄은 참된 자아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술가의 의도를 완전히 배제하는 ‘우연성’을 확보했으며, 또한 인과율을 부정해 무대에서 ‘동일성’의 철학을 실현해갔다. 즉, 기존 무대개념을 떠나 열린 공간에서 다중초점의 무용을 보여왔는데, 이를 테면 음악, 미술, 의상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각 장르는 서로간에 결코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능해 이들 모두가 합쳐져 커닝햄만의 혼합매체적인 무용이 탄생하게 된다.   

이번 공연의 작품들도 그런 작업의 계보를 잇는다. ‘스플릿 사이즈'(2003)에서 무용의 각 디자인 요소들이 보여지는 순서는 공연 당일 결정된다. 주사위를 던지고 그에 따른 우연에 의해 공연이 조합되는 것이다. 또한 천연 그대로의 이미지가 시적으로 울려퍼지는 ‘포인트 웨이'에는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슈타인의 그림과 동양화의 요소도 배경으로 등장, 커닝햄의 실험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1998년 파리에서 처음 선보였던 것으로 당시 무대, 음악, 의상에 대한 사전작업이 전혀 없이 공연돼 커닝햄의 우연성의 철학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그라운드 레벨 오버레이’(1995)라는 작품에서는 인간의 신체는 결코 어떤 방법으로도 무게를 주고받지 않으며, 모든 것이 멈춰 있으며 동시에 전진하고 있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즉 0과 1의 연속체인 것이다. 존 케이지에게 헌정하는 작품으로 마치 홀로 남은 커닝햄을 위로하는 듯하다.

음악과 무용 사이의 전통적 관계 파괴해

커닝햄의 무용사상과 미학은 포스트모던 시대흐름 속에 탄생한 것이었다. 2차대전 후 서구 예술가들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의 문제보다 예술의 의미와 활동, 창작과정을 중시하면서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순수예술을 지향했는데, 커닝햄은 이런 흐름을 무용계에서 이끌었던 선두주자였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당시 저드슨 교회그룹으로 활동하면서 우연성, 수학적 공식과 게임구조, 돌발성에 이르는 다양한 안무형식을 실험했다.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주로 여러 작품으로부터 일부를 발췌해 이벤트 양식으로 결합시키는 짜깁기의 형식이었는데, 여기서 완성과 전체성을 회피하려는 그의 의지가 엿보인다. 존재하는 건 단지 관객의 해석뿐이었다.

커닝햄이 무용원리나 안무방법에서 아방가르드적 성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의 영향도 컸다. 커닝햄의 친구들은 미술가, 조각가, 음악가 등 현대 미국 예술계에서 우연의 기법들을 창출한 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난 1992년 타계했던 미국의 전위작곡가인 존 케이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 케이지는 전통음악의 구조를 붕괴시키고, 동양철학과 비서양적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혁신적인 음악창조자였다. 1937년 이들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데, 이는 훗날 커닝햄의 예술세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만남이었으며, 두 사람은 40편 이상의 작품을 함께 해 예술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켜 왔다.

커닝햄의 무용을 두고 ‘비인격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무감각하고 기계적인 움직임만 볼 경우 그럴 수 있다. 특히나 음악과 무용 사이의 관계를 파괴했고,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기에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분절적인 동작의 표현에 있다. 커닝햄은 결코 ‘관객들이 어떻게 느껴야 하는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열린 시공간에 올려진 무용수들 간의 관계와 형식을 통해 그 무엇이 전달될 뿐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이사도라 던컨과 머스 커닝햄

이사도라 던컨(1878~1927)이 20세기 전반기를 풍미했다면 머스 커닝햄(1919~)은 후반기의 무용계를 섭정했다. 던컨과 커닝햄은 각기 추구하는 예술적 스타일이 달랐지만, 공통된 것은 둘 다 시대의 요구에 충실한 예술가들이었다는 점이다. 던컨은 인간의 내면과 심리묘사에 비중을 두는 것이 무용계의 대세였던 시절 맨발에 그리스 튜닉을 두르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꾸밈없이 표현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커닝햄은 그런 무용의 현대성이 매너리즘에 빠질 즈음, 무용의 형태와 형식을 고민의 중심에 두고 인간의 동작을 과학적으로 파고들어서 수많은 새로운 리듬을 무용계에 안겨준 발명가였다.

던컨의 낭만주의적 열정과 커닝햄의 인간에 대한 냉철한 탐색은 서로 상반돼 보이지만, 사실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라는 점에서 연속선을 그린다. 다만 던컨에서 비롯돼 그라함을 통해 확립된 자유로움이란 청교도적 문화상황의 번거로운 관행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커닝햄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단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보다도 명확하게 보고 듣는 것이 자유와 밀접하게 관계를 갖는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이것은 인간 신체의 자유로운 변형을 ‘어떻게’ 추구하느냐의 방법론의 차이로 귀결된다.

던컨의 시대는 총체성이 살아있던 시대였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위해 그는 무용가에게 살아있는 것의 힘, 건강, 고귀함, 구속 없는 한가함, 정적을 표현하는 동작을 요구했다. 그렇게 충분히 용해된 동작이 던컨의 손과 발에서 태어났다. 반면 커닝햄은 우리에게 ‘전체성’이 위험한 환각이며 ‘무관계’의 느낌을 체험할 것을 권유한다. 전체성을 거부함으로써 커닝햄은 무용을 완전히 세속화시키고 원시성을 제거시킨 최초의 안무가로 우리에게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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