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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광학’, 압축 없이도 동영상 전송 가능
‘위상광학’, 압축 없이도 동영상 전송 가능
  • 노준석
  • 승인 2020.09.25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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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결정과 메타물질 연구, 광학적 현상 제어

노준석 포스텍 교수(기계공학과)와 박사과정 김민경 씨가 최근 광학 분야 세계적 저널인 <빛: 과학과 응용>에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위상광학으로 무손실 혹은 저손실 광통신과 관련돼 있다. 빛의 파장 크기와 비슷한 크기의 파장인 경우 빛이 표면상태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제어하기 어려웠다. 위상광학으로 접근하면, 빛을 표면 상태와 관계없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게 해 무손실 광통신이 가능해진다. 이에 노준석 교수가 직접 위상광학 관련 학술의 흐름을 짚어봤다. 위상수학과 물리학이 만나 위상물리가 탄생했고, 다시 위상물리와 광학이 융합했다. 위상과학은 비압축 동영상 전송 등 산업기술에 응용될 수 있다. 

 

위상수학이란 본래 수학의 한 갈래로 연속적인 변형에 대해 변하지 않는 보존량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위상수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이고도 쉬운 예시로는 공과 도넛의 비교가 있다. 

 

공에 힘을 주어 모양을 변형시킬 때 자르거나 찢거나 붙이지 않고서는 도넛 모양으로 만들 수가 없다. 이는 공의 표면에는 구멍이 없는 반면 도넛에는 하나의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공과 도넛은 물체의 표면에 있는 구멍의 개수라는 보존량이 다르기 때문에 연속적인 변형에 따라 서로 바뀔 수 없다. 위상수학은 물체의 형상이나 위치 관계를 나타내는 보존량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존량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물리적 현상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공을 누르거나 늘려도 보존량은 일정하기 때문에 그 현상은 원래의 성질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외부 변화나 변형에 의해 물리적 현상이 바뀌는 기존 특성과는 반대이다. 이러한 기이한 특성으로 인해 위상수학은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접목되어 위상물리라는 이름으로 연구가 되어왔는데, 그중에서도 위상수학과 광학의 결합은 기존에는 없었던 재미있는 물리적 현상을 이끌어냈다. 

 

위상수학에서는 도넛과 컵을 같은 형태의 물체로 간주한다. 도넛이 변형돼 컵이 되는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

 

 

‘위상광학’, 수학과 물리와 광학이 만나다

 

위상광학은 위상물리와 광학이 별개의 학문으로 존재한다면 예측하거나 관찰하지 못했을 다양한 현상을 가능하게 한다. 먼저 광학은 위상물리를 구현하고 검증하기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 빛의 파장보다 작거나 비슷한 크기의 구조체를 만들면 광학적 현상을 제어할 수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빛인 가시광 기준으로 수백 나노미터에 해당하여 현재의 공정 기술로 제작할 수 있다. 따라서 원자나 분자 단위의 제어 없이도 다양한 위상물리 현상을 구현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두 벡터로 구성된 파동이므로 음향 등 스칼라 파동으로 기술되는 다른 분야에 비해 다채로운 물리 현상을 실현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는 광학이 위상물리의 발전을 도운 이유이다. 반대로 위상물리가 광학의 발전을 돕기도 한다. 기존의 광통신은 광섬유 등을 기반으로 하여 파장보다 수백 배 큰 영역에서 동작한다. 그런데 파장과 비슷한 구조체에서는 빛의 거동이 구조의 표면 상태와 주변 환경에 민감하고 산란이 일어나기 쉬워 제어가 힘들다. 그러나 보존량이 바뀌지 않는 한 외부 변화나 변형에 의해 기존의 성질을 유지하는 위상학적 특성을 광학에 접목한다면 빛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초소형 장치를 만들 수 있다. 이렇듯 위상물리와 광학은 서로의 발전을 돕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2.

 

광학, 위상물리 구현하는 플랫폼

 

광학에서의 위상학적 특성은 주로 광결정과 메타물질, 두 가지의 시스템에서 연구되어 왔다. 파장과 비슷하거나 작은 크기의 구조체는 산란자의 역할을 하는데 이를 이용하여 빛의 에너지 밴드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특히 에너지 밴드가 위상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기존에는 없던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물체의 내부에서는 빛이 흐르지 못하지만 표면에서는 빛이 흐를 수 있다. 또는 위상학적 물질 내에서 빛은 실험적으로는 발견되지 못했던 소립자 중 하나인 바일 파티클처럼 거동할 수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러한 위상학적 절연체 또는 반금속은 물체 표면의 결함이나 불완전성에도 본연의 성질을 유지하여 학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또한 위상학적 특성은 1차원부터 3차원까지 다양한 차원 공간에서 나타나며 가상의 차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저를 이용하여 4차원 이상의 공간에서도 연구가 진행되었다.

 

물체의 표면에선 빛이 흐를 수 있어

 

위상광학은 지난 10년간 빠르게 발전해왔으며 그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재도 위상광학은 비선형 특성, 가상 차원 등 다양한 물리 현상과 융합을 거듭하며 다양한 세부 연구 분야를 낳고 있다. 그럼에도 고전 및 양자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다차원 맵핑과의 결합, 광학적 준입자의 위상학적 특성 등 다양한 연구 거리가 아직 남아있다. 

 

위상광학은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산업 및 경제에서도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광학 장치에 위상학적 특성을 더하면 초소형 광통신 회로, 무손실 도파관 등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최근 들어 위상광학을 이용한 비압축 동영상 전송 등 산업적 응용을 위한 다양한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학문적으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실생활 응용까지 가능한 위상광학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

 

노준석 포스텍 교수(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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