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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감소하면 시간은 역행한다
엔트로피 감소하면 시간은 역행한다
  • 김재호
  • 승인 2020.09.25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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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증가와 감소
시간의 순행과 역행
물질과 반물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소중한 사람을 붙잡고 싶은가? 아니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하는가? 만약 그런 일이 과학적으로 실제 가능하다면 어떤가? 최근 개봉해 화제가 된 영화 「테넷」은 시간의 일방향성을 뒤집는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주요 키워드는 바로 ‘엔트로피’와 ‘인버전(inversion)’이다. 기존의 시간여행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우리의 우주는 점점 무질서한 경향을 띤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로도 불린다. 엔트로피는 낮은 상태에서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시간은 언제나 일방향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무실의 내 자리는 언제나 정리정돈을 해줘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질어짐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일이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내 사무실 자리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게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다. 액체는 고체보다, 기체는 액체보다 엔트로피가 높다. 

 

우리 우주의 고립계에서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빅뱅 이후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해왔다. 이 세상은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데, 그 이유는 물리학적 법칙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깨진 컵은 다시 붙여질 수 없고, 한 번 헤어진 연인은 쉽게 재회하지 못한다. 토스트 굽기를 생각해보자. 토스트는 굽기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우주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거의 모든 것이 완벽한 질서를 유지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의 무질서가 폭발했다.  

 

엔트로피를 낮추면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인버전이 되면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내뱉게 된다. / 사진 = 영화 공식사이트

 

엔트로피 증가는 필연적일까

 

여기서 영화 「테넷」의 반전이 시작된다. 바로 무질서의 폭발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영화에선 이런 기술이 ‘인버전’ 이름으로 개발돼 현재의 인류를 위협한다. 엔트로피를 낮추는 기술이 바로 인버전이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인버전이 가능하다면, 내가 사무실 자리의 청소를 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한쪽에선 계속 더러워지는 사무실의 내 자리를 청소하는 ‘내’가 있다. 다른 쪽에선 내 자리가 깨끗해져가는 상태로 향하는 ‘다른 내’가 있다. 영화 「테넷」엔 나와 다른 나가 싸움을 펼치기도 한다.   

 

영화는 인버전이 가능할 수 있는 힌트를 제시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제임스 맥스웰이다. 그는 빛 역시 전자기파의 하나임을 보여준 맥스웰 방정식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속 과학자의 칠판에 잠시 등장하는 ‘맥스웰의 도깨비’를 보자. 이 도깨비는 속도가 엄청 빠른 분자와 느린 분자를 구분하도록 칸막이를 설치할 수 있다.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혹은 차가운) 물을 섞으면 열평형상태에 도달한다. 하지만 도깨비가 칸막이를 설치해 속도 차이가 나는 분자들을 분리해놓으면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돼 불가능하다는 게 입증됐다. 

 

우리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식 목적론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확실하다고 믿는다. 또한 뉴턴식의 절대적 시공간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인 양자역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내가 다가서려 하면 상대방은 물러서는 형식이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듯, 미래가 현재에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중첩돼 있다.   

 

시간의 일방향성 넘어, 중첩의 세계로

 

영화 「테넷」에서 화두로 나오는 문제 중 하나는 바로 ‘할아버지의 역설’이다. 내가 과거로 가서 나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과연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영화에선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며 역설을 피한다. 내가 태어났다는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며,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할아버지를 없애더라도 말이다. 인버전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 행동에 영향을 끼치더라도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류를 위협하는 인버전 기술이 개발되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한편,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키워드는 ‘물질과 반물질’이다.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하는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를 말한다. 반물질은 입자와 전기적 성질은 반대이나, 같은 질량을 가진 입자이다. 전자의 반물질은 양전자, 양성자의 반물질은 반양성자다. 전자는 음전하, 양전자는 양전하를 띤다. 물질과 반물질로 인식되는 건 시간상 앞뒤로 움직이는 동일한 입자일 수도 있다는 게 과학적 설명이다. 즉, 양전자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는 전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스크린랜트>의 관련 기사 참조)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쌍소멸이 발생한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인버전으로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 이전의 나와 마주치면 안 된다. 영화에서 이를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순행(엔트로피 증가)과 역행(엔트로피 감소)은 물질과 반물질의 개념과도 대비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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