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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적 관점의 역사 필요"
"동아시아적 관점의 역사 필요"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4.04.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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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유산' 국제학술대회

지난 26일, 27일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최광식 고려대 교수, 한규철 경성대 교수)가 주최한 학술대회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한국/중국/미국/러시아 등 6개국 20여명의 학자들이 참가해 논의를 펼쳐 주목을 끌었다. 방청객이 이틀동안 7백여 명이나 참석해, 사회적 관심도 대단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쑨진지(孫進己) 심양동아중심 연구주임과 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조희승 교수 등을 직접 초청해 논쟁을 벌여보자는 애초의 기획은 이들의 직접 참여 대신 '논문' 기고로 대체돼 다소 맥빠진 감을 줬다.

학술대회는 고구려의 역사적 정체성 문제,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고구려 문화 유산의 특성과 관리 문제의 세 부분으로 진행됐지만 역시 ‘고구려사의 귀속문제’가 중심 초점이었다. 쑨 주임은 발표문 ‘중국 고구려사 연구의 개방과 번영의 6년’을 통해 “현재 중국이 옛 고구려 땅의 2/3, 북한이 1/3을 계승하고 있는 만큼 양국이 고구려를 공동으로 계승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구려 귀속 문제는 “고구려의 정치가 누구의 관할에 속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중국 중앙 정부로부터 고구려왕이라는 책봉을 받는 동시에, 중국의 중앙과 지방 관리인 征東大將軍. 平州刺史 등과 같은 책봉을 받은 것은 고구려가 역사상 중국에 예속됐다는 증거”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대의견도 팽팽했다. 조희승 교수는 ‘고구려는 조선의 자주적인 주권국가’라는 발표문을 통해 “고구려가 조선역사에 속하는 것은 사료적으로도 명백하다”라며 “중국정사의 하나인 ‘宋史’는 ‘왕건이 고씨의 자리를 계승했다’라고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지위 문제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북한학계의 첫 공식적인 입장인 셈이다. 모스크바대의 저명한 한국학자 짜를가시노바 교수와 피로쩬코 박사 역시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은 부여?백제?신라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며,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었다면, 광개토왕비에도 이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구려 유산 관리 현황도 관심을 모았다. 유네스코 조사위원으로,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실무자로서 참여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아리안느 페린은 이제까지 등재 추진 과정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고분벽화는 보존 작업상의 몇 가지 실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양호하게 보존돼 있으나, “북한에는 벽화 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관찰 방법, 적절한 절차의 연구 또는 실행 프로그램이 없다”는 지적이다.

종합토론 시간에는 미국 캔사스대의 스티븐슨 박사가 “민족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고, 이에 미하일 N. 박준호 모스크바대 교수가 “제국주의적(공격적) 민족주의와 민족해방적(방어적) 민족주의를 구분해야 한다”라며 역시 원론적으로 대응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학문과 정치는 별개여야 한다는 것과 동아시아적 관점의 역사 접근이 필요하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공감했지만 최광식 교수는 “당장 현실화되기엔 성급한 주장”이라며, “단계적 접근을 논의할 시점”이라고 정리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기존의 논의를 반복한 감도 있었지만 향후 논의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앞으로 중국사회과학원과 고구려연구재단의 공동학술대회, 국제교류재단의 국제학술대회에서 지속적인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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