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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피아니스트의 탄생』 펴낸 이강숙 한예종 석좌교수
인터뷰 : 『피아니스트의 탄생』 펴낸 이강숙 한예종 석좌교수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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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애정, '음악적 모국어'로 풀어내

▲이강숙 교수 ©
“이제 생애의 남은 시간은 소설만 쓰며 보내고 싶습니다.”

한국예술종학학교를 세워 10여 년간 총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예종 석좌교수와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강숙 교수(음악사)는 古稀가 다 된 나이에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우리에겐 음악이론가나 예술 CEO로만 알려져 있는 이 교수가 소년 적부터 간직해 온 또 다른 꿈은 문학가였다. 그래서 음대 재학시절부터 수차례 등단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매번 보기 좋게 떨어져 낙방자의 쓴 맛만 느껴야 했다. “소질이 없나보다” 포기하려 했지만, 지난 1998년 月刊 ‘현대문학’에 ‘술과 아내’라는 에세이와 2000년 ‘빈 병 교향곡’이라는 단편을 발표한 후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총장 퇴임후엔 하루 10시간 이상씩 소설을 쓰는 데만 집중해 이제 첫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현대문학사 刊)까지 펴내게 됐다.

사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느낌은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루소의 ‘에밀’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 철인 통치론이나 에밀의 성장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엔 강한 교육철학적 메시지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은 한번 손에 잡으면 단숨에 읽힐 정도로 줄거리의 힘이 있다는 것.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큰 줄거리는 민영이라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탄생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그린 것인데, 이 아이의 뒤엔 항상 올바른 길로 끌어주는 강주섭이란 선생이 버티고 있다. 강 선생은 이른바 ‘음악적 모국어’라는 철학을 내세워 민영이의 교육 과정 과정마다 좋은 선생들을 소개시켜 주고 진실한 조언자가 돼준다. ‘음악적 모국어’란 이 교수가 음악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시해온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음악은 모국어처럼 어렸을 때 흉내내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혀야 하죠. 그래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된 다음엔 ‘한국작품’을 쳐야한다는 겁니다.”

국내 음악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한국작품 연주를 기피하는 국내 연주풍토에 이 교수는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낸다. ‘한국적인’ 음악에 대한 이 교수의 남다른 애정은 미국 유학시절 더욱 굳히게 된 것인데, 모국어란 결코 서양 조성음악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KBS 교향악단 총감독을 맡았을 때는 지휘자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한국작곡가들의 음악을 중심으로 연주곡목을 설정하곤 했다.

이 소설 곳곳엔 음악교육계의 비리를 들춰내려는 이야기들도 숨어있고 또 한국음악 연주가를 후원하려고 뛰어다니는 강주섭 선생의 노고도 엿보인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음악미학에 대한 소견도 덧붙인다. “음악은 사용가치도 중요하고 감상하기에도 좋은 것이어야 해요. 정-동-정이 음악미학의 핵심입니다. 음악은 긴장감과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야 하는 것으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를 조절하는 게 좋은 음악이죠.”

사실 이번 소설은 첫 장편이기에 그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썩 만족하는 것 같진 않다. 주인공 민영의 피아니스트로서 정상에 이르는 고난이 너무 빨리 해피엔딩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질질 끌고 꾸미는 것 같아서 그냥 끝냈다”라고 대답한다. 아직까진 소설가의 면모보다는 솔직한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더 남아있는 듯하다.

요즘 이 교수는 학교특강과 도서국 위원장 때문에 이만저만 바쁜 게 아니다. 소설가로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지만 포기는 이르다. 지금 일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다음 소설의 바탕이다. 하지만 음악선생이든 소설가든 다 만만찮은 일이다. 그래서 고민도 많지만 주변에 딱히 고민을 나눌 상대가 없을 때도 있다. “요즘은 의논을 해야 할 때, 길가에 있는 돌이나 나무에게 묻기도 하고, 때론 강아지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라고 털어놓는 모습에서 고독자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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