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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전시실 맛보기
다양한 전시실 맛보기
  • 박찬희
  • 승인 2020.08.17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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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의 박물관 여행

전시실은 박물관의 핵심이다. 물론 박물관은 수장고와 같은 다양한 공간들로 구성되었다. 박물관을 간다고 말할 때는 대부분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간다는 걸 뜻한다. 때문에 박물관에서는 보여주고 싶은 전시를 잘 만들기 위해 전시실 구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전시 주제, 전시 유물, 전시실의 색, 조명, 진열장, 동선, 유물의 배치, 설명문의 수준과 분량, 관람객의 참여 방법 등 여러 요소들을 두루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 끝에 전시실이 탄생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수많은 전시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박물관답게 길고 긴 박물관 내부가 50개의 전시실로 꽉 채워졌다. 박물관 안내지나 안내판을 봐도 전시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다룬 선사·고대관 및 중·근세관, 각종 미술 작품을 만나는 서화관과 조각·공예관, 기증 유물을 볼 수 있는 기증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전시한 세계문화관이 3개 층에 걸쳐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전시실의 규모가 커서 꼼꼼하게 보려면 하루 정도로는 부족하다.

만약 다양한 박물관 전시실을 보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오면 된다. 또 새로운 시각으로 전시실을 보고 싶어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전시 유물과 전시 주제가 다양한 만큼 전시실의 구성이 다채롭다.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실과 미술 작품을 주제로 한 전시실의 구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전시실 조명의 밝기만 봐도 금세 안다. 때문에 주제와 유물에 따른 다양한 전시 구성을 보기에 제격이다. 또한 관람객이 전시실에서 어떤 인상을 받는지 살펴보기에도 좋다. 

전시실은 시간이 지나면 이런저런 이유로 개편을 한다. 대부분의 박물관은 한꺼번에 전면 개편을 하거나 형편에 따라 부분적으로 개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전면 개편하기 쉽지 않다. 전시실이 워낙 많아 부분적으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덕분에 여러 시기에 걸쳐 바뀐 전시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이곳은 전시실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곳이다. 따라서 전시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기 좋다.

국립중앙박물관 청동기‧고조선실. ⓒ박찬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이 제일 먼저 만나는 전시실은 선사·고대관과 중·근세관이다. 두 전시관은 모두 1층에 있는 곳으로 역사를 주제로 하였다. 대체로 이곳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 전시 유물은 역사 관련 유물들이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이곳의 조명은 다른 전시실에 비해 밝다. 아울러 진열장 안의 유물도 여러 곳에서 골고루 보이도록 밝게 비췄다. 물론 개편한지 오래되지 않은 신라실처럼 전시실 조명이 어둡고 유물에만 조명을 비추는 등 변화를 준 곳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Ⅱ. ⓒ박찬희

반면 2층에 위치한 서화관은 전시실 분위기가 1층과 상당히 다르다. 전시 유물의 성격이 달라지고 관람객도 1층에 비해 적다. 박물관에서 조명에 가장 민감한 유물은 종이와 천으로 만든 것이다. 조명으로부터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조명을 어둡게 하고 유물의 전시 기간을 짧게 해야 한다. 한편 책과 같은 역사 자료의 성격이 강한 유물과 달리 서화는 감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옆의 유물과 충분한 여유를 두고 전시해야 한다. 서화관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며 구성되었다. 전시실은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실보다 상당히 어둡다. 전시실 내부 조명뿐만 아니라 진열장 내부의 조명 역시 그렇다. 유물과 유물 사이의 거리가 넓어 비교적 여유롭다. 그래서인지 서화관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마음이 차분해지며 시선은 유물에 집중된다.

서화가 조명에 손상될 위험이 있는 반면 도자기는 조명에 손상될 위험이 거의 없다. 그러나 서화만큼 조명에 신경을 써야 하는 도자기가 청자다. 다른 도자기인 분청사기나 백자보다 조명의 색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고려청자는 조명의 색을 흡수하는 성질이 무척 강해 조명의 색에 따라 제 빛깔을 은근슬쩍 바꾼다. 분명히 푸른색이 아름다운 비색청자를 전시했는데, 막상 관람객은 붉은색이나 다른 색을 띤 청자를 볼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청자실은 무엇보다 조명의 색이 중요하다. 청자실에서는 이 점을 중요시하여 청자의 빛을 살리는 독특한 조명을 사용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인도‧동남아시아실. ⓒ박찬희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은 순차적으로 개편된다. 최근 개편한 전시실일수록 새로운 전시 기법과 최근의 고민이 반영되어 변화의 흐름을 살펴보기에 좋다. 세계문화관의 이집트실,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시아실이 가장 최근에 개편된 전시실이다. 전반적으로 내부 조명은 꽤 어둡고 진열장의 조명은 유물만 집중적으로 비춰 조명의 극적인 효과가 더욱 강조되었다. 전시실에서 관람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물로 집중된다. 또한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 관람객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였다. 박물관 입구에서 만나는 선사‧고대관의 전시실 분위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전시실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건의 유물을 어떻게 전시했는지 살펴보기에도 좋다.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전시할까? 박물관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할 정도의 유물은 그 위상에 걸맞게 대접한다. 신라 금관과 삼국 시대의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이 그 유물이다. 이 유물들은 따로 전시실을 만들어 오로지 이 유물들만 전시했다. 금관은 신라실 입구 동그란 전시실에, 금동반가사유상 두 점은 불교조각실 내부에 따로 만든 전시실에 교대로 전시한다. 두 전시실 모두 입구를 내부가 실루엣처럼 보이도록 처리해 밖에서는 윤곽만 암시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깜짝 놀라도록 만든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박찬희

거의 모든 유물은 진열장 내부에 들어있다. 그러나 모든 유물이 그런 건 아니다. 1층 복도 끝에 전시된 높이 13.5미터의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그렇다. 전시실 안에는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불교조각실의 거대한 불상들, 서화실의 괘불이 노출 전시되었다. 진흥왕 순수비 뒤편 벽면에는 이 비석의 원위치를 알려주는 거대한 비봉 사진이 걸렸다. 이 사진으로 관람객들은 진흥왕 순수비의 원위치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불상들은 진열장의 유리에 가리지 않아 원래의 질감과 표정이 잘 전해진다. 괘불 전시 공간은 워낙 높은 곳이 필요해 일반적인 박물관에서는 갖추기 힘들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천장 높이 걸린 괘불을 본 관람객들은 압도적인 크기에 놀란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정원. ⓒ박찬희

유물들은 실내에만 있지 않다. 야외 정원 곳곳에도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박물관 건물 바로 앞으로는 스님들의 무덤인 승탑과 승탑비가 늘어섰다. 작은 숲 초입에는 옛 보신각 동종이 전시되었다. 더 안쪽 숲길에서는 석불상,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서 모인 여러 석탑들을 만날 수 있다. 구불구불한 산책길을 따라 늘어선 석탑들은 비록 제자리를 떠났지만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야외 정원의 유물들은 제자리를 떠난 유물이 야외에서 어떻게 전시되면 좋을지 시사점을 던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보는 방법은 관람객의 숫자만큼이나 많다. 그중 하나가 전시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전시실의 전체적인 느낌, 조명에 따른 효과, 유물의 배치, 동선을 고려해 전시실을 눈여겨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럴 때 박물관 관람은 두 배로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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