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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 14: 대구지역 동양학자들 ‘동양사회사상 연구회’
연구모임을 찾아서 14: 대구지역 동양학자들 ‘동양사회사상 연구회’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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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회이론을 빚는다

지난 1997년 대구지역에 ‘동양사회사상 雜談會’라는 특이한 모임이 결성됐다. 국내 사회학 분야가 전적으로 서구학문의 지배 아래 연구돼왔다는 갑갑함을 떨쳐 버리고, 우리 고유의 사상과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이 지역 사회학자들이 터놓고 얘기하게 된 것. 여태껏 당연시해왔던 지식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따져보고자 스스로에게 메스를 든 것이다.

이들 모임은 얼마 후 ‘동양사상학회’라는 전국학회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초창기 멤버들을 비롯해 15여명의 학자들은 ‘동양사회사상 연구회’(이하 ‘동사연’)라는 소모임을 꾸준히 꾸려왔다. 올해로 벌써 7년째인 이 ‘동사연’에는 교육학, 철학 전공자들이 합쳐지면서 대구지역에서 ‘동양’을 공부하는 학제간 연구모임으로 점점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초창기 멤버는 이영찬 계명대 교수(사회학)를 비롯해, 홍승표(계명대), 윤병철(대구가톨릭대), 이종일(대구교육대), 백승대(영남대), 김규원(경북대) 교수와 김재범, 황현숙, 박병래 박사 등 모두 사회학 전공자였다. 하지만 후발주자로는 유가효 계명대(아동학), 장윤수 대구교대(철학), 정재걸 대구교대(교육학), 오창균 대구경북개발원(사회학), 권상우 신라대(철학) 교수와 이승연(윤리학), 강의숙(철학), 김태오(교육학), 김명하(정치학), 김병희(교육학), 이현지(사회학), 이선행(철학) 박사 등 각양각색의 전공자들이 참여했다. 토론을 할 때면 철학 전공자들은 ‘개념설명과 철학사적 맥락 짚어내기’를, 사회학자들은 ‘기형적 근대를 벗어나는 사상적 기반 다지기’를, 교육학자들은 ‘동양사상에 내재돼있는 탈근대적 교육사상을 발굴하기’를 맡는다는 등 느슨하지만 역할분담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스터디가 시작된다. 그간 가장 주력해온 분야는 ‘고전읽기’로, 四書(‘대학’, ‘논어’, ‘맹자’, ‘중용’), ‘주역’, ‘예기’, ‘도덕경’, ‘장자’, ‘선문찰요’, ‘퇴계서절요’ 등을 읽어왔다. 발제와 토론은 보통 저녁 8시까지 이어진다. 가장 격렬한 논쟁이 오갔던 주제로 연구원들은 ‘변증법적 논쟁’과 ‘현대과학기술’을 떠올린다. ‘주역’이나 ‘도덕경’에 나타나는 동아시아 변증법적 사유방식을 서구의 것과 비교했던 토론과, 현대 과학기술을 동양사상에 근거해 새로운 학문으로 정립하는 논쟁이었는데, 어떤 방향과 이론적 수준에서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 연구원들 간 이견이 만만찮았던 것이다.  

사실 동양고전을 읽는 모임이 새롭기만 한 건 아니다. 국내에 동아시아 담론이 활성화 되면서 동양사상을 공부하는 모임들을 여기저기서 어렵잖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사연’이 남다른 건 고전에서 현대적 의미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근대적 병리를 극복하는 탈근대적 사상의 대안을 동양에서 찾아낸 후 이를 모두 이론화 작업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이런 공통된 문제의식은 1997년 여름방학 때 이 분야 연구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부터다. 몇몇 연구원이 일본과 중국 대학을 방문해 사회학과 동양사상을 접목시켜 이론화 한 작업들을 조사해봤는데, 그런 유의 작업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론화 작업은 이들 연구모임의 가장 중심적인 목표가 됐고, 여기서 한국 사회학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 목표와 활동은 여러 저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교사회학’(이영찬), ‘깨달음의 사회학’(홍승표), ‘주역사회학’(김재범), ‘만두모형의 교육관’(정재걸)이 연구원들 각자가 동양사상을 이론화해낸 결과물이다. ‘만두모형’은 성리학적 교육이념을 정리한 것으로, ‘자아’를 실현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봄으로써 성장일변도의 교육관에 문제제기 한 것이다.

‘동사연’ 멤버들은 7년 정도 고전을 읽고난 지금, 이제는 조금씩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에 프로젝트 지원을 신청했고, 원전을 읽어왔던 문제의식들을 곧 공동저술로 펴낼 계획이다.

‘동사연’ 멤버들은 ‘동양적’ 취미도 같이 하고 있다. 탈춤, 요가, 태극권, 검도가 이들 멤버가 모여 하는 여가활동이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친목을 다지기 위해 며칠 간 한적한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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