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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파시즘 시대, 지식인의 내면풍경-『하이데거와 나치즘』(문예출판사 刊)과 『현실속의 철학 철학속
[테마] 파시즘 시대, 지식인의 내면풍경-『하이데거와 나치즘』(문예출판사 刊)과 『현실속의 철학 철학속
  • 권용혁 울산대
  • 승인 2001.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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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2 00:00:00
권용혁 / 울산대·철학

하이데거와 박종홍을 비교하려는 시도는 창조적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무리한 시도임에 분명하다. 하이데거가 서양 근대문명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감행하고 있음에 반해서 박종홍은 조국의 해방이나 성숙한 근대화를 위한 철학적 대안제시가 우선적인 관심사였다. 오히려 하이데거의 사상에 대해 박종홍은 혹독한 평가를 남긴다. 그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구체적인 사회파악 및 실천성이 결여된 힘없는 관념적 대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나치즘이나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평가한다.

사상 근거한 정≤鰥㈏?오류가능성

시대적으로 전혀 摸?두 철학자를 비교할 수 있는 점은 그들의 현실참여 유형이다. 그 저변에는 민족공동체에 대한 원초적인 수용과 순수한 애국주의가 깔려 있다. 하이데거는 근대 유럽에서의 기술문명의 지배로 인한 존재자의 존재의미 상실을 민족공동체 이념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박종홍은 절대빈곤이라는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적 열정에서 조국근대화에 동참한다. 이러한 이들의 현실참여 동기는 민족공동체가 추구하는 집단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민족국가의 조직적이며 배타적인 폭력성과 개인의 억압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유보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하이데거와 나치즘’과 ‘현실속의 철학 철학속의 현실’은 이런 점에서 같은 주제를 다루고있다. 박찬국은 하이데거의 사상이 일차세계대전 전후로 나타난 독일 우파사상가들처럼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와 민족공동체주의를 강조한다고 보았으며 현대기술문명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그들의 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을 밝힌다. 현대기술문명과 제국주의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그의 존재사상은 ‘조국’과 ‘고향’을 수호하려는 민족공동체우선주의로 이어지며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나치즘참여는 우연이 아니라 바로 그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있다고 평가한다. 김석수는 박종홍의 사상이 식민지시대 부정의 논리로부터 해방이후 창조의 논리, 건설의 논리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궁핍한 시대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박종홍의 후기사상은 군사정권의 ‘건설민족주의’와 결합됨으로써 적극적인 유신참여로 이어진다고 파악한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자로 밝히고 있는 박찬국은 하이데거의 존재사상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들에 포함된 보편적 논점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근대기술문명과 자유민주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논점들 또한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현실과 함께 철학해야함을 기본입장으로 삼는 김석수는 사회적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박종홍의 후기사상이 유신시대의 정치역학 구도속으로 매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이해방식에서 찾고 있다.
이 두 책은 하이데거와 박종홍이 자신의 사상적 굴절을 감수하면서 왜곡된 현실로 끌려들어간 것이 아니라, 철학적 이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참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특정 철학자와 그의 철학 그리고 그것의 현실과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이념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현실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당시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최소한의 철학적 반성을 도외시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순박한’ 현실참여의 위험

1930년대 초반의 독일은 인종우월주의, 민족국가 중심주의로 재편되던 시기였다. 소시민층의 정신적 동요를 민족국가주의로 흡수하고 군수산업체의 재정적 후원을 등에 업은 나치즘이 전체주의적 사회지배를 구체화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무시한 채 나치즘의 민족공동체 이념을 자신의 사상에 따라 재편하고자 했다. 그가 나치즘에 편승해서 위로부터의 사상개조를 감행하려 한 것은 자신의 이념실현을 위한 뿌리로 삼았던 민족과 민족공동체를 일종의 운명공동체로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와 같은 너무나 ‘순박한’ 현실참여 행태는 민족구성원들 사이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인간적·사회적 모든 관계의 갈등과 모순에 대한 사실적 분석을 도외시한 채 그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동질적인 단위로 단정해 버린 하이데거의 비현실적인 현실인식에서 기인한다.
그의 현실인식은 처음부터 사회적현실의 분화와 그 내적인 대립관계에 대한 사회철학적 반성을 고려하지 않은 관념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게다가 현대기술문명을 특정 민족공동체의 건설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하이데거의 역사퇴행적인 공동체 중심주의는 기술문명이 갖는 탈집단적, 탈국가적인 세계화 경향에 전면적으로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특수한 민족공동체의 구성원리가 세계시민공동체의 원리로 확대되지 못할 경우 그것에 내포된 폐쇄성은 오히려 과학기술문명의 폐해와 비견될 수 있을 만큼의 반동적이며 복고적인 특성을 띨수밖에 없다는 공동체논리의 이중성을 간과한 결과이기도 하다.
박종홍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가 적극 참여하게 된 유신시대는 군사정권의 반공이데올로기가 한층 강화되면서 민족국가건설이라는 전체주의적 국가관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위로부터의 인간 개조를 강조하는 반공이데올로기 교육과 국민윤리교육을 동시에 수행하고자한 그 당시 지배계급의 현실지배 논리에 대해 박종홍이 비판?시야를 갖지 못한 것도 결국은 다양한 계?@?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중첩적인 사회 현실을 배고픈 민족현실로 단순화시켜 버린 그의 현실 인식의 한계에서 유래한다. 물론 국민교육헌장 작성과 유신체제의 정당화에 적극 가담한 이유는 한국적 근대화의 지향을 민족의 주체성 확립과 민족국가 내부의 전면적인 도덕화를 실현하려는 그의 도덕적 열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애국적 열정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열정이 전체주의적 사회 작동 원리와 관계 맺을 때 발생한다. 그가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전체주의적 지배세력의 힘을 이용하려는 그 순간 그의 이념은 생명력을 잃고 하나의 도그마로 전락하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지배층의 전체주의적 현실 지배 논리를 강화해 주는 수단으로 변환된다. 이 경우 철학은 그 타당성 요구가 공공연하게 검토되는 철학적 광장을 떠나 전체주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밀실의 도구로 전락한다.
파시즘의 시대, 전체주의의 시대를 살다 간 이 두 철학자의 자화상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나치즘에의 참여를 변명으로 일관한 하이데거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대와 대결했던 대사상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사상적 완숙기에 유신에 참여해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던 박종홍의 행적에서 우리는 정치권력과 유착된 전형적인 이데올로그의 모습을 그릴 수밖에 없다.

사상의 생명, 시대와의 대결에서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오히려 지식인은 상아탑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논점은 맥락을 이탈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시대와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했기 때문에 그 이념이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사회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을 결여한 채 자신의 추상적인 이념을 무모하게 현실화하려 한 이들의 비현실적인 현실인식과 섣부른 현실참여에 있다. 철학자가 현실을 돌아볼 때 철학은 그가 덮어씌운 외피를 벗어버리고 스스로 비판과 대화의 장으로 나아간다. 철학자가 철학하기를 거부하는 바로 그 시점에 철학은 철학자를 버리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넓은 하늘로 비상한다. 그 이념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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