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0 (금)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1)공교육 정상화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1)공교육 정상화
  • 최현섭 강원대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 개혁의 토대: 우리사회의 '참인재' 상은 무엇인가

최현섭 / 강원대 교육사회학

입시 경쟁 과열, 사교육비 과부담은 지난 반세기 동안 끊임없는 교육개혁의 대상이었다. 그 동안 중학입시 폐지, 고교 평준화, 대학입시제도 개혁, 과외 금지 입법 등 참으로 많은 조치가 취해졌다. 근본적인 개혁을 한다고 특별기구도 만들었고 막대한 국가 재정을 투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입시 경쟁은 더 과열되고 사교육 부담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

개혁 실패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정부 실패론이 있다.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효율적인 대응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둘째는 시장 실패론이다. 학벌사회의 선두 대열에 서기 위해 일등 경쟁과 일류대 입학 게임에 몰두하는 교육시장의 왜곡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교육관 격차론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정부와 시장, 교육계와 경제계, 상류계층과 하류계층, 심지어는 공부 잘하고 못하는 학생과 부모간에, "있어야 할 교육", "갖추어야 할 교육 체제"에 대한 인식과 상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가운데 세 번째 주장에 무게를 둔다. 교육관이 다르면 같은 사태를 두고 상반된 평가를 할 수 있고, 교육관에 차이가 있으면 교육정책과 교육시장과의 부조화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개혁 담론이나 추진 과정에서 선결돼야 하는 것은 교육관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과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다.
그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공감과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인재관이다. 인재관이 다르면 교육 목표가 불일치하게 되고, 교육 만족도도 달라지며, 교육개혁의 방향과 내용도 큰 차이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육에서는 어떤 인재 양성의 방향이 중요하고 교육개혁이란 것도 그런 인재 양성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행정과 조직, 환경과 여건, 교수학습 과정과 평가를 재구성하는 전략이요,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인재관은 우리의 교육 담론에서나 교육개혁의 추진과정에서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교육개혁안이 발표될 때마다 홍익인간이니 도덕적 인간이니 하는 인재상이 제시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개혁의 강력한 지침이 되거나 그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발표한 정부나 이를 바라보는 언론과 학계 모두 인재상의 적합성과 그것을 확고히 교육현장에 착근시키려는 노력보다 이해관계 변화나 당사자의 불만과 같은 주변적인 데 관심을 더 뒀다.

근본적인 교육 문제의 해결을 바란다면, 당장 담론과 동력의 중심을 인재관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향과 목표도 분명치 않은 교육, 본질보다 주변에만 매달리는 교육개혁, 이해관계와 불만에 우왕좌왕하는 교육낭비로부터 헤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교육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입신출세적 인재관의 실상과 문제를 철저히 파헤쳐내야 한다. 말로는 동량재니 경쟁력 높은 인재 하면서도 실제로는 높은 자리와 부귀영화만 좇는 입신출세적 인재관의 실체를 벗겨내지 않고는 우리교육은 한발작도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머리 좋고 공부를 잘 하는 것과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과는 별개”라는 세간의 인식, “일류대학 출신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만 이웃을 위한 봉사는 소홀히 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편”이라는 국민들의 느낌을 확실하게 되돌려 놓는데 진력해야 한다.             

 나아가 지식기반사회, 무한경쟁 시대를 이끌어갈 참인재는 무엇이고 어떠한 능력과 자질이 필요한가에 관한 학술적, 실제적 탐색이 필요하다. 2003년 PIS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선택형 시험 점수는 높지만, 고차적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문제 해결력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사교육비 연10조원 이상, 과외 받는 학생 70% 이상, 수십조원을 들인 교육개혁의 결과가 이렇다면, 우리의 인재 양성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이제는 학교 성적보다 고차적 사고력,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며, 좋은 머리와 출중한 능력을 입신출세가 아니라 이웃의 행복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여하고, 정직, 정의, 정도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등 존경받는 인재관 탐색과 확립에 우리 학계가 나서야 한다.

또한 그동안 교육제도의 성패나 학생의 능력 성취 정도를 시험 성적의 총점에만 의존해 평가하고 낙제니 하향평준화니 하는 논쟁을 벌이는 학계의 저너리즘적 관행을 벗어야 한다. 진정한 평가란 인간의 능력과 자질의 치밀하고 분석적으로 진단해 개개인 또는 제도적인 처방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거기에는 얼음 같은 냉철함과 무한 책임감이 필수적이다. 교육 담론과 학문 탐구에서 이 원칙은 생명이다. 이제라도 이 생명을 되살리는 것이 교육을 살리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