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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서양근대철학』(서양근대철학회 엮음, 창작과비평사 刊)
[이책을 주목한다]『서양근대철학』(서양근대철학회 엮음, 창작과비평사 刊)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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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02 00:00:00

철학계의 통설대로 서양근대철학 연구가 본격화된 시기를 해방이후로 잡는다면, 서양근대철학 연구사 50년만에 우리에게도 ‘썩 괜찮은’ 서양근대철학 교과서가 생긴 셈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국내의 서양근대철학 전공자 25명이 모여 만든 ‘집체물’이다. 혹여 ‘집체’라는 단어에서 ‘80년대의 악몽’을 떠올릴 예민한 독자가 있다면, 진정하시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진술이 처음부터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아니었으니까.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범상찮은 저작이 서양근대철학에 대한 온갖 저주와 악의적 비방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우리 앞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황혼 무렵에야 날개짓을 시작한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물론 지금까지 우리에게 서양근대철학을 다룬 2차 연구서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그 무수한 철학사 저작들을 떠올려보라. 물론 그 중에는 소련과학아카데미나 동독 국정철학교과서의 해적판들도 다수 섞여있었지만, 90년대 초중반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이병수/우기동 지음, 돌베개 刊)나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지음, 새길 刊)처럼 그런대로 잘 풀어쓴 우리말 대중철학서들도 있었다. 아카데미 철학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이야 알 샤하트의 ‘근대철학사’(서광사 刊)나 P.스털링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刊), 요하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이문출판사 刊) 같은 번역서들을 즐겨 보았을 테지만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따지면 이 책들은 앞의 것들에 미치지 못했다.

서양근대철학의 교과서적 정리

하지만 국내의 철학서 역시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씌어진 것인 만큼 양적·질적 차원에서 서구의 번역서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철학사 기술의 관점이나 방법 또한 대체로 통속적인 철학사 서술체계(좌파적이건 우파적이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 출간된 ‘서양근대철학’의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기존의 서양근대철학사 교과서가 보여온 서술의 통속성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우선 눈에 띠는 대목이 대륙 합리론을 소개한 2부에서 말브랑슈의 철학에 독자적인 장을 할애해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근대철학사 교과서들이 말브랑슈를 데카르트의 충실한 복제판으로 취급한 나머지 그의 철학을 데카르트 이후 17세기 철학을 소개하면서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종합’을 다룬 4부의 구성 역시 독특하다. 대부분의 철학사가들이 칸트에게 ‘위대한 종합자’로서의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달리 빠스깔을 비롯해 리드, 멘 드 비랑처럼 다소 ‘생경한’ 철학자들을 칸트와 동등한 비중으로 취급하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멘 드 비랑이 칸트와 함께 18세기 이후 근대철학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핵적 인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10여 페이지 분량의 용어해설을 부록으로 첨부한 편집진의 세심한 배려 또한 돋보인다.

공동저작으로서 이 책이 갖는 장점도 빠뜨릴 수 없다. 공동저작보다 단일저작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이 우리 지식인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이긴 하지만, 서양근대철학사처럼 방대한 규모의 지식사를 기술하기엔 우리에게 축적된 지식의 폭과 깊이가 그리 대단치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한결 명확한 지식과 평가기준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해당분야의 전공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집필하는 공동저작이 오히려 강점을 갖기도 한다. 다만 관점과 기술방식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집필자 집단 내부의 윤독과 토론, 부단한 가필과 수정작업을 수반해야 함은 물론이다.

해소되지 않은 균열과 모순

하지만 이 책이 과연 그 만큼의 종합과 통일성의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이를테면 서양근대철학 전반을 개괄한 1부 집필자들의 시각과 합리론과 경험론의 비판과 종합을 다룬 4부 필자들의 시각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한다. 예컨대 “근대철학이 칸트에 의해 종합·완성되었다는 기존의 평가를 더 이상 유일한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4부 필자들의 견해라면, 합리론과 경험론이라는 두 사조가 “칸트의 선험론으로 종합된다”는 것이 1부를 집필한 학자들의 시각이다. 미묘한 균열과 모순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17∼18세기 서양철학의 역사를 ‘`‘체계정신’에서 ‘체계적 정신’으로의 이행’이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기술한 에른스트 카시러의 노작 ‘계몽주의 철학’(민음사 刊)과 이 책을 함께 검토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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