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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신경향: 가족연구의 최신 흐름
연구의 신경향: 가족연구의 최신 흐름
  • 이박혜경 인천발전연
  • 승인 2004.0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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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성기, 화두는 '변화'... 젠더 역학에 관심 증대

가족은 현재 여러 학문 분과에서 또는 분과 체계를 가로지르면서 중요한 연구 주제로 재등장하고 있다. 자연적인 영역, 또는 학문적 논구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일상적인 세계라는 가족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경험만으로는 그 미래를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한국 가족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이유일 것이다. 가족 연구의 새로운 경향이라 한다면, 이렇듯 가족 연구 자체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것 자체를 우선 꼽을 수 있다.

높은 이혼률, 여성가수주 증가 등 테마 다양

최근 한국 가족에 관한 논의에서 중심 화두는 단연 ‘변화’다. 가족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음에도 새삼스럽게 일고 있는 변화에 대한 관심은 최근 한국 가족의 변화 양태가 그만큼 폭넓고도 급격하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을 본질적인 성격과 형태를 지닌 것으로 보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폭넓게 수용되어 가기 때문으로 보인다.   

얼마 전, 가족 연구가 다소 소강 상태에 처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가족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주로 핵가족화 경향에 한정돼 있었다. 최근의 가족 변화에 관한 연구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현대 가족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는 고이혼율, 여성가구주 가구 비율의 증가, 일인 가구 증가 등과 더불어 저출산, 노령화 등의 인구 동태 등에 관심을 둔다. 역사적인 접근으로는 근대가족의 형성에 관한 연구들이 두드러진다.  

현대 가족의 변화 현상은 가족 해체나 가족 위기로 불리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다양성을 수용하자는 다원주의적 시각이다. 핵가족 중심적인 시각은 다양한 가족의 현실을 외면함으로써 가족 정책이 사실상의 다양한 가족들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된다. 다양성 논의는 가족 개념에서 핵가족의 규범적 지위에 도전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가족 개념 자체를 해체하는 구성주의의 입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가족 연구의 두 번째 경향은 이러한 가족 변화의 원인 및 대책에 관한 논의와도 관련된다. 가족 변화의 원인을 젠더 관계 변화 속에서 찾고 있는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남성은 생계벌이자 여성은 가사전담자’라는 근대에 강화된 이분법적 성별 분업은 후기 근대 사회로 오면서 도전에 처했다. 여성 취업의 증가와 더불어 노동자 전체의 고용불안정은 가구내 단독 벌이자로서의 남성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 가사 노동 분담에 대한 요구 등 평등한 부부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가족 질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이어서 부부 관계는 갈등에 직면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결혼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이혼에 대한 허용적 태도 등이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성의 취업이 늘면서 성별 분업의 체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부부 갈등에 대한 대안은 일과 가족의 공존 전략에서 모색되고 있다. 근대 사회의 일 중심성은 남성에게는 가족과 멀어지도록, 여성에게는 지나치게 가족에 매이도록 해 왔다. 성별 분업 체계의 약화는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로 하여금 일과 가정 중에 양자택일에 직면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중심성은 결국 남성노동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비판된다. 더욱이 근대의 개발 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인문 사회과학의 관심 속에서 일중심성에 대한 비판은 중요한 이론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젠더 연구에 대한 관심은 다른 한편으로 부성 또는 남성성에 대한 연구로 확장되고 있다. 가족 변화의 핵이 젠더 관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젠더 관점은 가족 정책 논의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정책 연구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미권 가족이론 탈피한 독자성 엿보여      

가족 연구의 새로운 경향 중 세 번째는 역사적 접근의 증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일상사 내지는 문화사적 접근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가족뿐 아니라 근대 가족에도 크게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구는 새로운 해석을 주된 목적으로 두고 있는데 젠더 구성 또는 젠더 역학에 대한 관심이 사적 연구들 속에서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이들 연구들은 연구 방법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는데, 담론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모성이 연구되고, 1920-30년대 신여성에 관한 대중 매체 분석 등 그 폭이 넓어지고 있다. 

종래의 가족사 연구가 제도사에 한정되거나, 가족 형태의 변화에 대한 관심에서 핵가족화에 대한 역사적 접근에 치우쳐 있던 것과는 매우 달라진 풍토이다. 종래의 가족사 연구가   핵가족화에 초점을 맞췄던 것은 주로 서구의 산업화 이후 핵가족설의 한국 사회 적용 가능성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이론이 한국 사회에서 설명력을 갖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한국 가족의 실제 속으로 뛰어든 연구들 속에서 한국 가족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풍부한 이해의 실마리들을 건져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미권의 가족 이론에 대한 의존을 넘어서서 가족 연구의 독자성을 구축하고 나아가 학문의 서구 중심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거나, 가족을 본질적인 것이기보다는 변화하고 새로이 구성되어 가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갖는 이론적 함의는 지대하다. 현재처럼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가족 해체나 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모순이다. 해체나 위기를 맞는 것은 가족 그 자체가 아니라 핵가족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가족 개념을 불안정화하고 있는 지금의 연구 접근들은 가족의 경계를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와 미래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이박혜경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여성학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을 공부했으며 가족에 대한 문화적 접근에 관심이 많다. ‘한국 가족의 변화와 구성에 관한 여성의 권리’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페미니즘’(이후刊, 2002), ‘페미니즘과 과학’(이대출판부 刊, 2002) 등을 번역했다.

 

최근에 출간된 가족 연구서들

가족의 이름으로 : 한국근대가족과 페미니즘(이재경 지음. 또하나의문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 가족을 진단하고, 그 변화를 여성의 경험을 통해 읽어낸다. 가족 제도가 여성에게 가지는 업악성을 분석하는 한편, 주변부에 머물렀던 여성들의 역할을 재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편집부 엮음, 또하나의 문화)

이십대부터 오십대까지 '가족'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담았다. 전통적인 가족 규범부터 신세대가 경험하는 가족, 결혼, 이혼, 동거에 대한 경험과 고민이 삶 그 자체로 녹아들어 있다.

한·중·일 3국 가족의 의사소통 구조 비교(권용혁 외 지음, 이학사)

한·중·일 3국의 민주주의 정착과정과 그것의 사회·정치철학적 함의를 논의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가족을 분석했다. 철학·사회학·정치학·지역학 등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동아시아학'의 한국발 기초 자료를 축적했다.      

현대 가족이야기(조은주 지음, 퍼슨웹)

 변화에 직면한 오늘날의 한국 '가족'과 여성의 삶을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가족과 여성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의 부인 18명을 인터뷰해, 이 기업이 결혼, 가족형태, 부부관계, 자식교육관을 어떻게 조형해 동자 부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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