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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주제들 빠짐없이 포괄
전통적인 주제들 빠짐없이 포괄
  • 고인석 전북대
  • 승인 2004.02.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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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과학철학의 이해』(제임스 래디먼 지음, 박영태 옮김, 이학사 刊, 496쪽, 2003)

▲ © 리브로
고인석 / 전북대·과학철학

과학철학은 하나의 전문분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가치를 지닌다. 즉 그것은 '자기 전문분야'의 학문 탐구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학자에게 기본 보약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전공학문을 갓 탐구하기 시작한 학생들과 신진 학자들에게 과학철학은 필수코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사심 없는 의견이다.

다행히 우리 대학들엔 이미 딱 '과학철학'이 아니라도 그 비슷한 관련 강좌가 상당수 개설돼 있다. 필자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그런 강의를 맡아 진행해 왔는데, 그런 과정에서의 고민거리 하나는 무엇을 교재로 할까 하는 물음이었다. 물론 앨런 차머스의 책이나 존 로지의 책 등 좋은 책들은 이미 여럿 있었지만, 이런저런 미련은 항상 남아 있었다.

최근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고 하기에 얼른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것은 방금 말한 문제상황에 비춰 한 걸음 진전된 장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영국 브리스틀대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제임스 래디먼이 2002년에 내놓은 책을 박영태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아주 잘 생긴 책이다. 표지 디자인도 좋고, 더 얇은 종이를 써서 부피를 좀 더 줄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질과 인쇄상태도 아주 좋다. 문장들도 부드럽게 술술 읽혀서 번역서라는 사실을 간혹 잊게 만드는 것 역시 커다란 미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과학철학의 전통적인 주요 주제들을 빠짐없이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순서 역시 합리적으로 배열하고 있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은 이 책을 과학철학 강의의 교재로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중요한 장점으로 빛날 만한 것들이다.

"과학철학은 경험으로 알 수 없는 대상들에 관한 과학이론들에 인식론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과학이론들이 도입하고 있는 관찰할 수 없는 대상들의 존재를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가."--서문에서

책 한 권으로 모든 갈증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면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적 관점에서의 엄밀성과 충분한 깊이, 초보자도 거부감 없이 빠져들 만큼 친절한 서술, 주요 주제들의 빠짐 없는 포괄, 한 학기에 맞춰 진도를 짤 수 있을 체제와 분량. 이런 덕목들은 분명 부분적으로 상충하는 것들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서 필자는 차라리 이 책의 저자가 조금 욕심을 덜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 책은 학부 수준의 교재용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입문의 구실에 충실하게끔 최대한 쉽고 간결한 지형도를 그려 보이는 일에 머물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물론 저자의 욕심 덕분에 책은 더 풍부해지고 깊어졌다.) 좋은 책을 발빠르게 발굴해 소개해준 옮긴이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면서, 다음 번엔 그가 더 좋은 과학철학 교재 한 권을 손수 만들어 내놓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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