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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반 '전자 행동주의' 눈길 끌어-해외통신원리포트(미국)
인터넷 기반 '전자 행동주의' 눈길 끌어-해외통신원리포트(미국)
  • 박소연 미국통신원
  • 승인 2004.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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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경향과는 달리, 미국 학자들이 정치적인 사안에 언론이나 출판 같은 매체를 통해 직접 개입하는 일은 그다지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 점에서 미국 지식인들에게 지난해는 뭔가 특별한 한 해 였을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지식인들이 눈에 띄게 사회 이슈들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한 해 덕에 좋았던 열 가지'. 다소 역설적인 제목의 이 글은, 제 3세계와의 공정한 거래를 주장하는 활동을 펼쳐온 글로벌 익스체인지와 이라크전 당시 핑크빛 반전 시위를 조직했던 여성주의자들의 모임 코드 핑크의 공동 설립자 메데아 벤자민이 알터넷을 통해 2003년을 익살스럽게 회고한 글이다. 벤자민 같은 이에게, 아니 스스로를 보수로 분류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확실히 2003년이 최악의 해였던 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그러했고, 각종 법안·정책의 개정이 극우·보수 편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점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벤자민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 덕분에(!) 전지구적으로 거대한 반전 운동을 조직할 수 있었으며, 지난 몇 달간 주류 미국인들조차도 진보적인 책들이나 부시 행정부의 실책을 풍자하는 각종 매체들을 열심히 구입하게 되었고, 폴 크루그먼이나 마이클 무어 등의 책은 뉴욕타임즈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말했다. 진보적인 세력들이 인터넷을 통해 교류하면서, 전자-행동주의(e-activism)가 가능하게 되었고, 일반인들이 거대 자본과 기구들에 필적하는 집단의 힘으로 사회적 이슈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2003년이 최악인 덕분에 좋아진(!) 한 가지. 이 외에도 사회 이슈에 대한-각계 인사들의 시민적 '커밍 아웃'들을 어느 해 보다도 많이 목격할 수밖에 없었으며, 2백여 개 시·도가 애국자법안 (patriot act)에 반대하는 입장을 개진했었다. 반은 우스개겠지만, 2003년에 좋았던 점들이란 말하자면, 문제적 상황을 끼고 있는 사회 이슈들이 대중적으로 소통했다는 셈이 된다. 유사한 현상이 학문시장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넘쳐나는 이슈들에 당면한 현재라면, 참여는 물론이고, 학문적 체계화 역시 학자들의 몫일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2004년을 달굴 사회과학적 주제들을 예측해볼 수 있겠다.

1990년대 말부터 지난해까지 메이저 방송사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유통되지 않는 뉴스들이, 적어도 같은 사안에 대해서 '다르게 보는' 시각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지난 엔 그 활동이 최고조였다고 여겨진다. 위에서 언급한 "최악의 한 해 덕에 좋았던 열 가지"가 실린 알터넷 (www.alternet.org)을 비롯하여, 정기적으로 언론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탐디스패치 닷 컴(www.tomdispatch.com), 일간지·시사주간지·독립언론에 실린 기사들 중, 보수언론에서 흔히 접했던 것과는 다른 진실들을 엮어 제공하는 트루쓰 아웃 (www.truthout.org)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 이들은 전자-행동주의를 이해하는 핵심인 까닭에 정치학이나 신문·언론학 분야에서 논의가 빠르게 준비되고 있다.

2003년 미국은, 유독 '법안'을 둘러싼 숱한 갈등들을 목격했다. 뿐만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들도 필요한 시점이다. 홈랜드 씨큐어리티 법안이나, 패트리어트 액트, 낙태금지 법안, 어퍼머티브 액션의 수정, 개악된 이민법안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에 해당한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슈들이 좀더 진지하게 학계에서 성찰되기 이전에, 정치적으로 사안이 터지면서야 반대의견이 개진되는 식의 반복된 양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아쉽다.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지문날인과 사진촬영을 요구하는 새 법안을 우리가 법의 큰 원리에서 용인할 수 있을 것인지, 지금까지의 낙태 찬반 논쟁의 '성과'를 수정된 법안이 반영하는지의 여부 등등은 여전히 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재론되어야 하는 이슈들일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지 간에,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학자들의 밀접한 참여와 더불어 단비 임기 응변적인 대응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의 담론들의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박소연 미국통신원/버지니아텍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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