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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 전상인 교수의 '2002년 대선과 한국의 보수'를 읽고
비판 : 전상인 교수의 '2002년 대선과 한국의 보수'를 읽고
  • 강원택 숭실대
  • 승인 2004.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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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이념적 간극 보여줘…다원주의적 관용 아쉬워

지난 9월 화제가 된 전상인 한림대 교수의 논문은 논쟁적이다. 2002년 대선에서 젊은 세대의 긍정적 역할론을 부정하며,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가 오히려 이들의 부정적 특징을 노출시켰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원택 숭실대 교수의 반론을 실었다.<편집자주>

강원택 / 숭실대·정치학

2002년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이념적 차별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념적 입장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상인 교수의 글은, 본격적인 학술 논문이라고 할만큼 분석적이지는 않지만, 지난 대선을 평가하는 보수층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체가 없는 보수-진보 표현

이 글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의문점은 과연 전 교수가 생각하는 보수와 진보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글에서는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反美가 별도의 절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봐 미국을 대하는 태도가 보수-진보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반공이데올로기의 수용 여부가 한국 보수-진보 이념의 핵심적 구분 기준이라는 사실은 여러 경험적 분석에서 이미 확인이 된 만큼 전 교수의 이러한 전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전 교수는 선거 운동 기간 중 제기된 반미를 미국과의 절연이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촛불 시위를 마치고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것이 진짜 우리의 모습"이라는 표현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반미는 미국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반미를 외치는 진보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논리일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전부 혹은 전무'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전 교수의 이러한 극단적 시각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이념적 간극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제기된 반미는 미국과의 절연이나 단절을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동안 사회적 금기였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친 세대들에게 미국에 대한 태도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었겠지만, 냉전과 권위주의 통치시기를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독재자의 집권을 위한 흉기로 변신했고 반미는 정치적, 사회적 금기로 변질돼버렸다. 이처럼 살아온 시대적 상황과 경험에 따라 반공 이데올로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생겨났고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세대간 이념 갈등으로 부각됐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 교수는 세대 문제에 대해 "세대갈등 그 자체가 대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러는 자폐적이고 가끔은 즉흥적이며 때로는 비현실적이고 이따금은 비주체적인 2030 세대의 실상을 부각시킨 계기로 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젊은 세대들을 '정보화 시대의 자폐아'라고 부르고 있다. 유권자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30대까지를 포함한 젊은 세대의 정치적 판단 능력에 대한 엄청난 불신의 표현이다.

이런 시각은 결론에서도 확인된다. 전 교수는 "지난 2002년 대선의 본질은 세대교체나 이념역전이 아니다…그것은 현재의 주류사회와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려는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 파워그룹은 80년대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2002년 대선이 세대교체나 이념역전과 무관하다는 주장의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에 당혹감을 갖게 되는 것은 이렇게 대선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 도대체 선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선거가 권력을 두고 다투는 싸움이기는 하지만 지난 대선의 본질이 이렇다면 노무현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자폐적이고 즉흥적이며 비현실적이고 비주체적'이거나 권력 투쟁을 추구하는 80년대 운동권 세력에 놀아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없어도 진보는 존재한다"

전 교수가 지적한 대로 노무현의 당선을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역사적 필연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선거란 그 시점의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해 집합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집합적 결정이 반드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고 볼 수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잦은 실수와 무기력으로 인해 그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유권자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거 결과를 대중 동원이나 특정 집단의 조정에 의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근간에 대한 부정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어쩌면 전 교수가 말하는 보수-진보는 이념보다는 정파적인 특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보수 대신 이회창 편, 진보 대신 노무현 편으로 표현을 바꾼다면 오히려 전체적인 글의 해석이 보다 용이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보수 퇴조를 수용할 수 없고 보수 폐기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전 교수의 핵심적 주장처럼, 보수와 진보라는 상대적인 이념은 언제나 공존하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치하거나 제압하는 것은 아니다.

이회창 없이도 보수가 존재하듯이 노무현이 없어도 진보는 존재한다. 정파적 판단이나 관점을 넘어서 상이한 세계관의 공존을 용인하려는 다원주의적 관용의 결여가 아쉽다.

필자는 런던정경대학에서 '단순다수제 선거제도 하에서 제3당의 지지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거와 정당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이념, 지역, 세대와 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선거를 종합분석한 저서 '한국의 선거 정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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