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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7인이 논하는 우리시대의 美
전문가 7인이 논하는 우리시대의 美
  • 강성원 서울대 外
  • 승인 2003.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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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학: 동시대 미학의 과제와 아름다움의 가치

세계에 대해 가장 자유스럽게 갖게 된 가치감정, 개인의 생명을 북돋우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게 바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자유스런 판단의 질적 차이를 담보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의 가치는 현혹가치, 즉 아우라로서만 존재하기에 아름다움의 가상적 힘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마비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올바른 판단으로 나가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올바른 생활이상을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은 모든 문화의 기본과제가 됐다. 하지만 우리 인문과학은 미학을 분과학문으로만 인식하며, 민족공동체 미학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인문과학의 근간이 되는 중심 가치가 상실된 것이며 인문과학의 위기는 여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미학의 과제는 인문과학의 가치중심을 확립하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 인문과학에서의 아름다움의 가치에 대해 다시 묻는 일이다.
강성원 / 서울대  미학

디자인: 양식을 통한 지속가능한 美의 추구

 

현대사회의 미는 계속 낡아지며 폐기되기 때문에 계속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역설적인 구조에 처해 있다. 20세기의 모던 디자인은 새로운 기술과 재료, 그리고 급격한 사회 변동 등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양식을 창출함으로써 현대사회를 재질서화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내 근대의 양식을 결정짓는 건 특정한 미적, 정치적 이념이 아닌 자본주의 이윤 추구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디자인은 자본주의의 ‘생산-소비’ 메커니즘에 빠르게 통합돼갔다.

 

문제는 이런 자본주의의 소비미학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문명론적 상황에서 새로운 사물의 미학이 요청되고 있다. 그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단지 친환경적인 재료 사용이나 재활용 가능성에 대한 고려에 그치는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미학적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을 형성해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 가장 훌륭한 미적 내구성은 ‘양식’이므로 어떻게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 범 / 국민대  디자인평론

 

음악: 樂의 자생적 의미에 대한 탐색

요즘 음악계는 서구 예술음악, 미국 주도의 대중음악, 그리고 한국내의 전통음악, 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으로 포장돼 수입되는 다양한 비서구권 음악들이 경합을 벌이는 형국이 돼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내 ‘음악적 근대’의 과제가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

한국의 ‘음악적 근대’에 대한 고민이 자생적 틀을 갖추기 위한 전제조건 중 하나는 독립된 장르로서의 ‘음악’이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뮤직’에 대한 번역어로서의 ‘音樂’ 이전의, 전통적 의미의 ‘樂’ 개념을 적극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건 복고주의적 요구가 아니라 탈장르화 된 세계의 문화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현대적 요구다. 서구의 탈근대적 논의는 이미 ‘뮤직’이란 단어를 ‘투(to) 뮤직’ 혹은 ‘뮤지킹(musicking)’의 형태로 동사화해 쓰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제안은 실용주의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반면 樂?歌?舞에 대한 총체적 이해로서의 전통적 ‘악’ 개념은 실용주의적 차원을 넘어서는 심미적 차원을 담고 있다. 이 ‘악’ 개념에 대한 근대적 이해와 수용이 가능할 것인가. 이 물음은 우리 시대에 남겨진 가장 핵심적인 음악적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최유준 / 동아대 음악평론가

四  문학: ‘서정’의 복원인가, 확장인가


최근 우리 시의 미적 요건은 낱낱 시편의 예술적 완성도로 집중되고 있는데, 그게 과연 ‘서정’의 원리를 복원한 것인가 아니면 확장한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거느리게 됐다. 주지하듯 ‘서정’은 주체가 사물을 통해 겪는 순간적 경험에 관심을 가지며, 거기서 비롯되는 주체의 인지적?정서적 반응에 가장 직접적인 자기 근거를 둔다. 이때 주체는 세계로부터 초월하지 않고, 생의 순간적 파악을 통해 세계에 참여한다. 이는 주체와 대상의 ‘동일성 원리’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사이에 날카롭게 개재하는 불화나 균열의 양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를 우린 ‘아이러니’의 시정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서정’의 동일성 원리를 적극 복원해갈 것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의 정신을 극대화함으로써 ‘서정’의 외연을 넓혀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마주친다. 나는 ‘서정’도 역사적 개념임을 전제함으로써, 이것의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해석과 표현 기능을 확충해가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서정’은 이성적 사유를 매개로 하는 계몽, 타자의 시선을 통한 부단한 자기 검열, 감각의 전회를 통한 지각의 갱신을 모두 자신의 몫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이는 주체의 해체보다는 주체의 기능과 역할을 새롭게 가다듬는 과정에서 가능하다.
유성호 / 교원대  문학평론

미술: 분열적 인식에서 존재론적 통합으로

미의 근간이 그러하듯, 미술의 근간도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시대미술을 회고하건데, 이와는 전혀 무관한 듯하다. 이를테면, ‘통합’이 아닌 ‘분열’이 그 시원이 된 듯.  분열적 사고, 분열적 스타일, 타자적 시선, 유목주의, 디아스포라 같은 수상쩍은 용어들이 시대의 사유에 흠집을 남겼다. 예술 역시 분열에 가담해 왔다.

분열적 스타일들이 전 지구촌으로 확산되면서 美는 급진적인 속도로 진실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진지함’들은 고전적 식상함이란 명목으로 단죄됐다. 반면, 가볍고 감각적인 것, 단순하고 웃기는 것들이 지적 아방가르드의 특성을 대신했다. 반달리스트적 쾌감, 서브컬처에 대한 맹목적 선호, 말초와 페스티쉬에 대한 물신적 집착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뤄 왔다.  이런 시점에서 미래를 말하려면 ‘통합의 회복’을 논해야 한다. 미술은 다시 고도의 통합성의 회복을 꿈꿈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에 답하는 자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아름다움은 자신의 고리를 다시 진실에 걸어야 한다. 예술은 적어도 인간이 더 잘, 더 많이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에서 ‘선함’에 대한 욕망을 회복해야 한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대신,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따듯한 애정과 성찰을 향수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심상용 / 동덕여대 미술사


  건축: 미니멀리즘, 디지털, 그리고 기하학

여느 분야처럼 건축 美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오늘날 건축 美는 ‘형식과 구조’, ‘가상과 실재’, 그리고 ‘표상과 표현’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의된다. 우선 형식과 구조는 형식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간다. 건물의 표피를 형식화시킨 미니멀리즘, 대지를 형식화시킨 랜드스케이프 건축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와 더불어 가상과 실재의 관계는 건축미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연관시켜 준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 모델링 기술이 건축디자인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건축 표현법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엔 주로 우주 항공산업이나 의료 진단용 기기에서 사용되던 소프트웨어들이 건축 디자인에 속속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매우 복잡한 형태라도 간단히 디지털 화면 속에 담아낼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표현 개념은 과거의 표상과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현대 건축이 기대고 있는 미적,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건축의 주요 디자인 방법으로 인정받는 다이어그램, 주름, 프락탈 기하학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과 긴밀히 연관되기 때문이다.
정인하 / 한양대건축사

영화: 극한의 미학

한국 영화는 지금 ‘극한의 미학’이라고 할만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003년, 영화들은 개인적/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뤘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4인용 식탁’ 등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수연은 ‘4인용 식탁’에서 가난과 우울증으로 인한 미필적 고의 유아 살해 문제를 신중히 다뤄냈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는 동일하게 견딜 수 없었던 시대와 금기의 욕망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 안 수수께끼와 해법에만 머물러 극한의 재료를 선택한 요량치고는 엔터테인먼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2004년 한국 영화의 미학은 무엇으로 논해질 것인가.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의 장승업보다 더 하층민의 삶을 다루는 ‘하류인생’을 갖고 돌아온다고 한다. 1960~70년대 소위 포스트 4?19를 다룰 이 영화에 대해 기대해 볼만하다. 또한 역사적인 종군 위안부 3부작 다큐멘타리 작업 이후 ‘밀애’를 내놓았던 변영주 감독은 젠더 역할을 바꾼 코미디 ‘발레 교습소’ 촬영에 들어간다. 2003년 ‘극한의 미학’을 추구했던 한국 영화가 더 깊은 심연을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다시 조폭이나 코미디 장르로 귀환할 것인지…. 하지만 기대는 늘 새해의 축복이다.
김소영 / 한예종 영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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