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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계 12위의 경제 국가며, 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행사를 치룬 우리의 문화수준인 현대 건축물은 어떤가. 임석재 교수의 ‘현대 건축과 뉴 휴머니즘’은 바로 이런 건축인의 자괴적인 물음에서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내용의 경과를 단순히 나열한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해박한 지식으로 고전에서 현대를 두루 아우르며 필자의 내적 심리마저 극적으로 표현한 플롯의 형식을 띠고 있다. 때문에 독자들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한편의 시사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자료에 충실한 현장감은 이슈를 유발시키고, 그냥 한 개인의 감상적인 에세이다 싶으면, 심도 있는 이론으로 무장한 날카로운 분석이 이를 불식시키고 있다.
"동서양 주거문화는 쓸모있음에 대한 개념에서 차이진다. 한국의 전통주거는 쓸모있음을 비어있는 상태로 보았다. 그것은 내외부 구별이 없는 것이다."-본문 162쪽에서
여기서 다소 긴 부재의 ‘르네상스적 식견’이라 함은 필요한 모든 능력을 겸비하려 했던 르네상스인의 자세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고, ‘시사 프로그램’이란 일반인에게는 자칫 지루하고 아카데믹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문서적의 한계를 철저하게 현장에서 파헤쳐 가며 그의 논지를 펴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서구의 이론적 토대를 빌리되 어디까지나 그는 한국의 건축에 애착하면서 인간적 토대에서 건축과 사회?문화?예술을 비평적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척박했던 ‘한국 건축계의 비평’은 서로를 위안하면서 안주해왔다. 모든 사회의 상황이 그러하니 건축계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메이지시대 이후 1세기 가량의 양식논쟁을 통해 전통성의 현대화를 이룩한 이웃나라 일본의 세계적인 현대건축물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반세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지부를 찍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를 건축인 모두가 고민해 왔다.
여기에 임석재 교수의 책은 마침표를 찍으려는 일보를 하고 있다. 다만 여태껏 그래왔듯이 방대한 전문지식과 폭넓은 지적 호기심이 대중의 호응에 기웃거리는 수려한 문체보다는, 전문영역으로 좀더 깊숙이 수렴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이제 또 한 사람의 토머스 모어를 상상한다면, 과욕일까.
이일형 / 순천향대,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