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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사회학을 만드는 사람들
이론사회학을 만드는 사람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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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줄사회에 도전하는 학제적 동맹

2001년 창립된 한국이론사회학회(회장 한상진 서울대 교수)가 요즘 화제다. 선언만 되풀이돼온 학문의 자생성이 이 쪽에서 그려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무엇 때문인가. 물리학자들이 주도해온 ‘네트워크 과학’이 이론사회학의 주요
활동무대다. 네트워크 사회학을 꿈꾸는 학자들의 열의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오래 기억에 남는 토론회
올 가을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한국 이론사회학회의 네번째 모임은 물리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이 네트워크 이론의 적합성, 적용방법과 수준 등을 심도 있게 토론했다.

장덕진, 강병남 서울대 교수, 김환석 국민대 교수가 과학 분야에서 나섰고, 심리학은 한규석 전남대 교수가 나오는 등 각 분야 인재들이 집결했다. 오래 전부터 ‘우리사회학’을 고민한 김필동 충남대 교수, 전성우 한양대 교수, 이재열 서울대 교수, 이기홍 강원대 교수, 강수택 경상대 교수가 핵심멤버로 행사를 이끌었다.

초청받아 온 인류학자 강신표 인제대 교수는 이 토론회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최근 장문의 後記를 작성, 학회 홈페이지에 올려 열기를 북돋는 노익장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회사를 전공했지만 이론사회학계에 기대를 품는 지승종 경상대 교수 등 원군들도 많다.

하지만 신생학회나 신생이론의 설득력은 처음엔 항상 높았다. 과거 ‘게임이론’이 그랬듯 언제 주가가 폭락해 한낱 유행으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 자생이론 모색을 내세운 이론사회학은 따라서 서방에서 건너온 ‘네트워크’를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날 장덕진 교수의 발표는 그간의 이론적 수용을 전체요약하는 성격이었는데, 토론자들의 반응은 기대보다 매서웠다. “분석기술 이상은 아니다, 네트워크라는 방법론적 가정을 존재론적 명제로 대치할 수 있나, 체계적일 수 있다는 가정과 의무감이 섞인 논문이다, 이데올로기적 함의는 연결망 분석에서 어떻게 끌어내나” 등의 질문을 쏟아내 자생화 첫단추를 잘 채웠다.

연결망이 아니라 연줄망이 옳다는 이병혁 시립대 교수의 발언은 우리 식의 변형에 대한 제안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후견-피후견 네트워크를 비롯해 한국적 의식구조를 장악하는 건 연결이 아니라 연줄이라는 것. 강신표 교수는 토지문화관에서 학술대회가 열리게 된 과정을 연줄망 이론으로 살필 수 있다며 대강의 그림을 그려주는데 재미있다.

“작가 박경리는 한국 사회의 그물코다. 수많은 독자를 만들어 이론사회학회 회원까지 불러들이는 큰 그물코다. 그런데 누가 한국 이론사회학회와 박경리 씨를 연결했던가도 주목해야한다. 들리는 바로는 김형국 서울대 교수가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김형국이 그물코다.

그는 환경학 교수인데 이론사회학에 어떻게 다리를 놓았나. 김형국은 서울대 사회학과 18회 졸업생이다. 이론사회학회장 한상진은 같은 과 21회다. 그리고 같은 학과에 봉직하고 있다. 김형국은 또 어떻게 토지문화관 박경리와 연줄(망)이 닿을 수 있나. 그는 화가 장욱진을 좋아해 그분의 화실을 10년 가까이 출입했다. 사회과학자로서 드물게 문화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연줄망)를 해왔다”는 식의 밑그림이다.

실질적 분석 가능케 하는 틀 모색
이론사회학은 이런 재미있고 실질적인 관점을 영화산업이나 지방토호의 연줄망 등에 적용해볼 이론 틀을 모색하기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유격훈련을 시작한 이 연구경향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으로는 구조주의와의 차별성, 계급 같은 전통적 주제와 연결, 미시적 국면과 거시적 국면의 흐릿한 관계 극복 등이 있다고 지적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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