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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현준 “건축은 관계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작업…아직도 불안은 성취의 원동력“
건축가 유현준 “건축은 관계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작업…아직도 불안은 성취의 원동력“
  • 장혜승
  • 승인 2020.05.27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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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조적 변화는 멈추게 된다.”(397쪽)

최근 신작 '공간이 만든 공간-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펴낸 건축가 유현준(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은 불안해서 멈출 줄 모르는 사람이다. 기후가 지닌 한계 극복과 서로 다른 문화 간 교류를 통한 융합의 사례를 설파한 책처럼 때로는 관음증처럼 보일지라도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로 얽힌 그물망을 더듬어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건축가 유현준을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났다.

-공간에 머물 이유가 있어야 도시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하셨는데 공간에 머물게 되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겠죠.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를 거고요. 머무르고 싶은 이유도 다 다릅니다. 누구는 차 마시고 싶고, 누구는 사람 구경하고 싶고, 또 다른 누구는 자연 구경하고 싶을 거고요. 그런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는 게 좋은 도시의 덕목이라고 봅니다."

1층에 자리잡아 바깥이 내다보이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 건물 1층.
1층에 자리잡아 바깥이 내다보이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 1층.

 

-교수님이 공간에 머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다른 사람 구경하는 거 좋아해요. 약간 관음증인데요. 지금 사무실에서 1층 회의실을 여기로 잡은 이유가 이 공간이 지면보다 1m 높이 있고 필로팅 공간인 처마가 있고 그늘진 곳에서 사람들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카페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한강시민공원.
한강시민공원.

-건축은 관계와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고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건축의 핵심이라고 하셨는데 교수님이 보시기에 갈등 해소라는 본연의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한 건축물은 무엇인가요?

"한강시민공원이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평평한 자연녹지공간이에요. 누구나 공짜로 들어가서 지낼 수 있고 밤 시간에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죠. 아파트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고 강변도로에 차들이 있으니까 밤에도 안전하죠. 밤낮으로 쓰임새가 있는 도심 속 공간이라는 점이 제일 좋아요. 모든 서울 시민들은 한강시민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던 공통의 추억이 있으면서 그게 소셜믹스(social mix,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 분양 아파트와 공공 임대 아파트를 함께 조성하는 것으로 주거 격차로 인해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소셜믹스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 싫어해요. 여러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건축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어요. 사람 갈등 해결하는 방법이 2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하드웨어적인 방법과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입니다. 소프트웨어는 정책이나 행정절차로 해결하는 거고, 하드웨어는 공간 구조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통해서 갈등지수를 낮추면 불필요한 데 드는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사진=을유문화사 제공
사진=을유문화사 제공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등 전작에서는 도시와 우리의 모습에 질문을 던지시고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도시를 이야기하셨는데 기존 저서들과 달리 이번 신간은 기후가 공간과 인간의 생각에 미친 영향 등 좀 더 사고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보입니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번 신간은 20년 가까이 집필한 책이에요. 맨 처음 구상한 건 1999년도에 뉴욕에서 실무하던 시절부터 구상한 건데요. 제가 건축을 한국에서 4년, 미국에서 4년을 공부하면서 두 개의 다른 관점에서 건축을 접하다 보니 동양과 서양의 건축과 문화에 대한 차이점을 비교하게 됐어요. 사고의 패턴이 다른 특징들이 보이게 되면서 그 이후에도 10년에 걸쳐 다른 책들도 보면서 생각들이 자라났고 살이 붙게 된 거죠.“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 화두라고 책에서 언급하셨는데 획일화를 깨부순 가장 모범적인 건축물이나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사람들이 다 그런 사례를 만든 사람들이죠. 세계적인 건축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들 획일화를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안도 다다오는 동서양을 섞고 루이스칸은 과거와 현재를 섞었어요. 칠레의 알레 한드로 아라베마라는 건축가는 칠레 사회의 도시빈민이라는 이슈를 풀려고 하다 보니 새로운 건축이 나온 경우죠. 청년주거 문제라든지 저소득층의 주거 소유 문제라든지 대한민국이 답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건축이 답을 제시한다면 이 또한 획일화를 깨부순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책 말미에 언급하셨는데 교수님이 건축하실 때 인간다움을 살리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뭔지 잘 몰라서 앞으로 남은 생애 숙제라고 생각해서 쓴 거예요. 답을 찾았으면 대단한 철학자가 됐겠죠. 저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질문이 많은 사람인데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이죠. 우리는 가치를 관계에서 찾으려 하는데 그 연장선이에요. 건축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작업입니다. 주변과의 관계, 사용자들끼리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죠.“

-불안감이 지금 성취의 원동력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네. 지금이 옛날만큼 불안하진 않은데 불안전성에 대한 생각들이 사람을 발전시키는 것 같아요. 불안감은 옛날보다 많이 사라지긴 했는데 모든 분야에서 제가 배워야 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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