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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성 삭제된 식민지연구...기존 성장론 재탕 수준
식민지성 삭제된 식민지연구...기존 성장론 재탕 수준
  • 김인호 경성대
  • 승인 2003.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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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한국 근대의 공업화』(호리 가즈오 지음, 주익종 옮김, 전통과현대 刊, 374쪽)

김인호/ 경성대·한국사

최근의 식민지근대화론은 근대화의 내발적 요소에 대한 고민을 교묘하게 흡수론적 관점으로 변용해 식민지 이해의 속류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른바 일국사적 관심을 배제하려는 원축론, 조선내 시장 확대를 매개로 한 사회적 분업론, 조선인 구매력 확대론, 맨 파워론, 흡수이론 등 식민지 지배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영역 그리고 '비자율적인 내발요소'의 주연급 상승을 도모하면서 일제에 의해 왜곡된 식민지상을 그래도 꿋꿋했던 조선인의 모습의 연대기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그래도 일본의 지배는 남긴 게 있다'는 오도된 식민지상을 창출하는 데 큰공을 세운다. 호리 가즈오 쿄토대 교수의 '한국근대의 공업화'는 이런 식민지근대화론의 최신 논의를 집약한 저작이다.

저자는 분단 아래서도 높은 경제발전을 보인 남한자본주의의 역사적 조건에 대한 몇 가지 의미 있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는 기왕의 군수공업화론, 생산력확충동인론을 전면 비판하면서 조선내 자생적 소비시장 확대와 사회적 분업 확산을 매개로 공업화의 조건이 확충돼간다는 이른바 분업론적 관점(역내 분업, 사회적 분업)을 공업화 연구에 투영했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제국=지배와 억압, 자기완결', '식민지=수탈, 종속과 파행'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비판했다.

또한 일제 지배정책사 중심의 역사인식이나 일국사적 자본주의 발전론이 갖는 문제를 지적하고, 조선의 독자적인 본원적 축적 형태를 상정함으로써 국적자본주의도 아닌 이식자본주의도 아닌 '동북아자본주의의 원형'을 그리고자 했다. 저자의 관심은 이것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사적 이해의 투영과 비서구형 자본주의 발전사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특별히 동북아 지역 자본주의의 독자적 개성과 그 비교연구를 축적함으로써 이 지역 자본주의 형성에서의 구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저자의 고민이 어떻게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각인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경제사적 이해만으로 본다면 높은 성취다. 하지만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단순한 한국의 준선진자본주의화 라는 문구 옆의 느낌표를 찍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고도화 속에서 배태된 우리 사회의 왜곡과 역사적 굴절에 대한 물음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특별히 일제하 조선의 자본주의화라는 미사여구에서 감춰지는 식민지성 문제는 일부 근대화론자들이 아무리 일국사적 틀을 버리고 정책사 중심 연구를 해체하면서 지역사라는 또 다른 설명을 가한다고 해도 사라질 수 없는 그 자체로 세계사이고 보편사의 일부다. 그렇기에 식민지연구는 식민지성의 이해를 기반으로 할 때 보다 보편적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식민지성에 대한 인식은 황홀한 경제성장의 현재형에 압도돼 속류화된 채 기왕의 근대화론자의 출발점에서 함께 하고 있다. 서문에서 식민지를 경험했음에도 왜 구미지역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 지역에서 특히 한국만이 자본주의화에 성공해 오늘날 준선진국 진영에 다다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경이감을 드러내고 있다. 쉽게 말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시아의 네 마리 룡' 가운데 하나에 대한 역사적 조건을 알고 싶었던 것이고, 종래의 일국사 차원이 아닌 동북아 지역사 차원에서 자본주의 형성사를 보고자 했다. 나아가 한국사회가 왜 식민지시대에 본원적 축적의 진행을 수반해 불가역적으로 자본주의가 강하게 규정하는 사회가 됐는지 실증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저작 곳곳에서 그러한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열이 돋보였다. 무역과 생산과의 역학관계에서 기왕의 상품시장화론에 반대하면서 조선내 시장의 확대와 사회적 분업의 확산으로 오히려 역으로 일본과의 무역이 강화되고 무역량이 증가했다고 파악한 점은 새롭다. 그러면서 이러한 공업화의 내적 요소는 일본본토공장의 침투나 혹은 무역관계를 통하여 다양하게 조성된다는 입장이다.

일단 이러한 저자의 논의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할 문제를 보자. 우선 저자는 동북아 지역내 분업 확충과 조선내의 사회적 분업의 확대를 중요한 자본주의화의 단서로 포착하고, 시장적 요소를 원축의 중요한 토대로 파악했다. 이는 종래의 비지론이나 이식자본주의론 등의 이중구조론에 대한 비판적 탐구의 결과였다. 아울러 당시 공업화는 생산재와 중간재 그리고 소비재의 흐름에서 포착할 수 있는 조선내 사회분업의 확산과 관련이 있으며 식민지 구매력의 확대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의 논의는 (1)식민지 경제의 파행을 역내분업이라는 틀 속에서  (2)식민지 사회의 파탄을 동북아 지역사라는 범주에서 (3)조선내 기형적 생산관계의 창출을 이른바 사회적 분업의 확산이라는 논리를 통해 희석시키고 있다. 이는 식민지경제의 전반적 왜곡과 파행을 동북아경제 발전의 효율적 토대로 바꿔서 설명하려는 의도이자, 일본과의 연관에 의해서 조선경제가 존립할 수밖에 없는 실상을 조일공생론으로 치환하려는 것이다.

공업화 과정에서 그러한 조선의 요구('개성')가 존재하고 일본과 공존하려는 지지 세력이 시장을 매개로 존재한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오늘날 가격차나 기술수준 등의 비교우위에 기초한 역내분업론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대단히 부차적이고 비자율적인 내발요소다. 국민경제의 기반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 기본적인 수급법칙마저도 본토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던 역사적 조건에서 특별히 경제라고 해서 별다른 독자개성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저자의 분업론은 또 다른 식민지 종속성의 표현일 뿐이다.

두 번째, 저자의 기왕 연구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두드러지는 탈이중구조론 문제다. 그런데 이중구조론적 인식이 저자가 말하는 자본주의적 토양과 한반도 지역의 '개성' 있는 자본주의화 가능성이라는 원래의 의지와 어떠한 상호관련이 있는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역내분업의 확충에서 빚어진 조선경제의 파탄은 수량적으로만 환산할 문제도 아닐 것이다. 기왕의 논의에서도 보편사적인 영역에서 이탈한 특수한 식민지의 특성만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식민지성이 보편적 역사발전 법칙의 일부이기에 그런 것이다. 이는 저자가 동북아 단위의 자본주의 구성과 진화를 언급하려는 근본적인 취지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는 한국의 자본주의화를 가져온 역사적 조건에는 일정한 관심이 있지만, 왜 하필 식민지이며, 침략이었는지, 왜 자생적인 동북아 자본주의를 비서구 지역에서 일본이 주도했는지 탐구가 없다. 결국 동북아의 경제적 성공이 지역사적 토양에서 발아했다는 이해 이외 역내분업관계의 왜곡이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결여되고, 오히려 분업에서 파생된 자본주의적 긍정적 요소에 대해 斷章取義해 우상화하고 있다. 자칫 일제의 대동북아 경영이 적어도 효율성은 있었다는 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자본주의화와 동북아 경제연관 문제에 지극히 관심을 보이다보니 자연히 기왕의 근대화론에서 보이는 성장론을 재탕하거나 양적, 외형적 근대화의 모습에 대한 기대가 가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업화가 철저히 일본본토 의존으로 진행되면서 그때 형성된 일부의 공업시설도 해방 후에는 무용지물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대규모 공장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인이 운영하거나 조선인의 자체적인 경영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은 무척 적었다. 뿐만 아니라 기업운영에 절대 필요한 자금을 대는 은행도 모두 총독부가 지정하는 곳으로만 지원하게 돼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조선인 자본은 일본인 기업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즉 당시 조선공업은 양적으로 팽창했지만 '내실있는 발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것은 저자가 조선에서 내적 분업구조 혹은 순환구조가 존재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해결될 소지가 아니었다.

저자의 말대로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간의 지배 수탈 일변도의 획일적인 역사인식은 많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리고 동북아 지역의 이후 역사가 한반도-중국-일본 등 세 지역의 연대에 의해 더욱 차원 높게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대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국사적 관심과 이론을 해체하고 동북아 차원의 논의로 진행하는 것을 통해 단순한 자본주의화와 준선진국화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에 그칠 경우 그러한 인식은 올바로 현재라는 역사 속에 뿌리내릴 수 없고, 식민지에 이어 또 한번 한반도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식민지성이 거세된 식민지 연구는 마치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환자를 형색만 보고 정상이라 판정하는 것과 같다.

필자는 고려대에서 '일제의 조선공업정책과 조선인자본의 동향(1936-194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0년대 경제사를 전공하면서 경제사상과 문화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식민지조선경제의 종말' 등을 저술했으며, 주요 논문으로 '일제말 조선총독부의 중소공업육성정책과 그 성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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