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9:07 (월)
'개혁' 빠진 방안…"참여정부만의 고뇌 없다"
'개혁' 빠진 방안…"참여정부만의 고뇌 없다"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12.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득 2만불 시대 도약을 위한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

"새로운 것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가 지난 21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4백여명의 총·학장에게 보고한 '소득 2만불 시대 도약을 위한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교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유사이래 처음으로 4년제 대학의 총장·전문대 학장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발표된 방안이라고 하기에는 이전 정부 정책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중심대학 육성, '선택과 집중' 식 지원, 지방대 역량 강화, 대학 구조조정 유도 등 그동안의 정책들을 한 데 묶어 놓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에 대한 실망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한 가지 물음으로 집약된다. 참여정부에 기대했던 '개혁성'은 다 어디로 갔는가. <편집자주>

교육부가 지난 8월 '교육인적자원개발 혁신 로드맵'(이하 '교육혁신로드맵')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21일 '교육혁신로드맵'을 다소 구체화한 '소득 2만불 시대 도약을 위한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이하 '대학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윤덕홍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지난 21일 교육부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4백여명의 대학 총·학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발표한 이번 방안은 향후 참여정부 대학정책의 기본 방향이 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그만큼 이번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이 고등교육을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자신 있게 내놓은 것과 달리, 이번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대학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교육의 수월성과 연구생산성 제고'를 강조하는 과거 DJ 정부의 교육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 중론을 이뤘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이라고 하기에는 '개혁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지난 '교육혁신로드맵'과 동일한 지적을 받고 있는 셈.

지난 '교육혁신로드맵'은 교수회 법제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 대통령의 주요 공약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시간강사처우개선 문제에서는 강사료 인상, 전임교원 증원 등 이미 논의됐던 수준에 그쳐 '개혁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더욱이 이번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은 '교육혁신로드맵'이 다뤘던 국립대학회계제도 도입, 전임교원 증원·사회보험 혜택 부여 등 시간강사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하고 있어 교육부가 최소한의 것들만 발표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논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참여정부의 대학교육정책을 처음 체계적으로 선보인 것이었는데,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라면서 "BK21 사업 등 문제가 많은 DJ 정부의 교육정책을 참여정부가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라며 참여정부만의 진지한 성찰을 아쉬워했다.

교육부는 이번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포스트 BK21 사업 등을 통한 연구중심 대학 집중 육성 △지방대학 역량 강화 △기초학문분야 육성 △의학·법학·경영 전문대학원 도입 △선택과 집중 식 대학 지원 △대학 구조조정 유도 △대학 자율화 확대 △ 평가전담기관 설립 추진 △산학협력 활동 촉진 등을 참여정부의 주요 대학 정책으로 꼽았다. 이는 DJ 정부가 지난 1999년 '교육발전 5개년 계획 시안'에서 주요 고등교육 정책으로 △연구중점대학원중심대학 육성 △지역우수대학 중점 육성 △인문학 및 사회과학분야 학술연구 진흥 △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대학정원·학사 자율화 확대 △국립대 특별회계제도 도입 △한국대학평가원 설치 추진 등을 내세웠던 것과 판박이 모습을 하고 있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고등교육 정책 주요 내용 비교

연구중심대학 집중 육성 연구대학원중심대학 육성
대학의 자율역량 강화, 대학자율화추진위원회 설치 대학 입학·학사·정원 자율화
기초학문육성사업 5개년 계획 수립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학술연구진흥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 사업 추진 지역 우수대학 선정, 지원
법학•경영학•의학 전문대학원 도입 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검토
평가전담기관 설립, 평가예고제 및 주기제 도입 한국대학평가원 설치 추진
우수 이공계 연구 인력 확보 이공계 교수 정원 증원
대학내 산학협력단 운영 활성화 대학별 학교기업 육성, 지원
전문대 주문식 교육과정 운영 전문대 구조조정 및 주문식 교육 운영 우수대학 선정, 지원
대학 구조조정, 국립대간 연합대학 추진시 행•재정 지원 구조조정 추진 대학 재정 지원
국•공립대 대학평의회 외부인사 참여 확대 국·공립대 대학 이사회, 교무위원회 설치
국•공립대 회계제도 개선 국립대 특별회계제도 도입
이사회 회의록 자필서명제 도입, 예•결산 공개제도 내실화 사학에 공익이사제 도입, 사립대 예·결산 공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설치 교육부 내 대학분쟁심의회 설치 추진
정원동결·감축시 재정지원/ 한계법인·부실법인 퇴출 경로 마련 /외국우수대학 유치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고등교육재정지원법 제정 추진/ 교수학습센터 활성화/ 엄정한 학사관리, 졸업인증제 활성화, 기업만족도 평가 도입/ 대학의 시설활용 규제 완화 무작위 선정에 의한 표집 감사제도 확대/ 한국학 전문대학원 육성/ 연구비 중앙관리제 실시/ 총장직선제 개선 / 대학 교원 임용 투명성 ·객관성 확보 및 계약임용제 도입/ 평가재정지원사업의 체계화·효율화

포스트 BK21 사업을 재개해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각각 7∼8곳을 연구중심대학으로 집중 육성,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든다는 교육부의 계획에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안상헌 충북대 교수(철학)는 "BK21 사업이 지닌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부정적 결과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교육부가 말많고 탈많은 대형 국책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라며 "BK21 사업이 불러온 학문분야간의 불균형, 학문의 기형적 발전, 성과중심주의 등에 대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 교수는 "대학의 자율성을 말하고 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결국 대학들은 돈 나오는 구멍을 쫓아다니고, 교육부는 돈으로 대학을 끌고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문분야의 균형적 발전이 배제된 채, 프로젝트 중심인 연구만이 활성화되면, 대학교육의 기형성과 왜곡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된다는 것이었다.

송영출 광운대 기획처장(경영학)은 "자칫 이전의 BK21 사업처럼 대학들이 프로젝트 사업을 급조해 돈을 따내는 것에만 혈안이 될 경우, 밑빠진 독에 물붇는 것처럼 예산낭비만을 초래하는 것이 뻔하다"라며 교육부의 조급한 '세계대학 육성책'을 꼬집었다. 성급하게 추진된 포스트 BK21 사업이 또다시 지방과 기초 학문분야의 연구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또한, 교육부의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이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가치만을 앞세워 대학의 '공공성'과 운영의 '민주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장(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교육개혁의 실체가 온데 간데 없이 없어졌는데, 적어도 인수위의 교육분야 보고 내용을 담고자 했다면 이같은 방안들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대통령 공약사항이던 사립학교법 개정은 사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학청산시 법인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교육부가 산학협력 활동 촉진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기업만족도 평가, 산업체와 계약에 의한 학과·학부 설치, 산업체 인사의 교육과정 개발 참여, 학교기업 설립 운영 활성화 등은 대학을 제품생산공장의 부설연구소나 단순기술인력 양성 학원으로 변모시킬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한편, 이번 '대학경쟁력 강화방안'이 시간강사 처우개선에 대해 별다르게 언급하지 않은 것과 관련, 변상출 한국비정규직대학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교육의 절반을 시간강사에게 맡겨둔 것에 대한 문제 의식 없이, '소득 2만불 시대 도약을 위한' 대학 경쟁력을 말한다는 것부터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 변 위원장은 "교육부가 논쟁을 피하고자 민감하지만 너무도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교육부 방안은 시간강사 처우 개선에 대해 단 한줄로 언급하고, 대학교수회 활성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에 대해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조용히 누락시켰다.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개혁의 중점 방향으로 △학벌문화 타파 △시간강사 처우 개선  △국립대학 의사결정구조 개선 △대학교수회 활성화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주요하게 다룬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번 교육부의 방안은 수월성과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관리방법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측면이 크다. 인수위가 "사립학교법 개정이 교육개혁의 핵심사안"이라고 표명한 것과 달리 교육부는 "비리·분규 사학에 대해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만을 검토하는 데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

교육부는 '개혁'은 고사하고, 대학 운영의 민주성, 의사결정구조·지배구조 개선에는 소극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